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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또는 스마트폰 때문에 긴 글을 읽지 못해. 집중력이 떨어졌나봐.’같은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얘기에서 출발했지만, 차분하고 길게 적어 내려간 글입니다. 꽤 재미있게 읽었는데, 주된 논지와 흐름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뇌는 가소적이다: 최근 뇌과학의 연구결과들을 통해, 기존 통념과는 달리 뇌는 특정 능력에 대해 영역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고, 특정 훈련을 할 때마다 해당 능력이 강화된다는 얘기를 합니다. 반대로 특정 자극이 줄어들면 해당 능력이 약화된다는 얘기도 통하죠.

2. 글 읽기, 쓰기는 특수한 기술이다: 지도와 시계라는 기술이 각각 인류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개념과 접근방식을 바꿔놓았듯이, 문자(글 읽기, 쓰기)는 기존의 구술문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류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3. 긴 글에 몰입하는 독서는 인간의 사고를 깊게 만들었다: 문자는 특정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또는 기록으로 남기려고 시작되었습니자. 하지만, 이내 다른 방향의 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이런 글들을 읽으며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부자연스럽게’ 고도로 집중하고 의미를 해석하고 유추하고 자신의 논리를 만드는, 즉 생각을 깊이하는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즉 1+2를 합치면, 문자, 책이라는 새로운 기술 덕분에 사고를 담당하는 뇌가 더욱 활성화되고 강화된다는 주장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죠.

4. 인터넷은 건너뛰며 읽기에 최적화된 강력한 매체이다: 인터넷의 본질이자 가장 큰 장점은 하이퍼텍스트, 즉 링크이고, 이 덕분에 다른 여러 매체들을 압도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선형적인 독서에서는 긴 호흡으로 하나의 생각을 따라갔어야 하지만, 인터넷에서 글 읽기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자신에게 의미 있는 정보를 ‘골라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정보를 받아들여 흡수하기보다는 좀 더 의미 있거나 흥미 있는 정보를 계속 찾아다니게 되는데, 뇌는 정보의 가치판단하는 것에 부하를 뺏기기 때문에, 정보를 흡수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못하게 된다고 하네요. 결과적으로 인터넷을 할 때의 뇌는 ‘산만하다’는 것이죠.

5. 인터넷을 많이 할수록 뇌는 산만해진다: 정확하게 이런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직설적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1+4를 합치면 나오는 결론이죠. 문자와 책이 등장한 후, 인류는 책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계속 깊게 생각해야 했고 그 결과로 뇌도 그런 쪽으로 강화되었지만, 인터넷은 뭔가를 깊게 생각하거나 기억하기보다는 현재 읽는 것을 훑고 가치 판단하는 쪽으로 강화시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깊은 생각을 할 수 없다라는 것이죠.

각 장의 주제와 그를 뒷받침하는 논리는 굉장히 훌륭했고, 그래서 그 각 장들이 모여 이루는 결론에도 일리가 있었습니다. 비록 책 후반부로 갈수록, 논리에 비약이 있거나, 조금 극단적이거나 감정적인 표현들도 나오지만, 개인 경험을 비롯해서 전반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고요.

자, 그럼 어떻게 할까… 하는 부분이 문제겠는데요. 저자의 입장은 다소 모호합니다. 분명 현대의 이런 기술은 장점이 많고, 인류가 그렇게 변한다고 해도 이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자의 입장은 기억을 아웃소싱하는 것은 인류의 문화를 아예 흔들 수도 있고, 인터넷은 우리의 사고나 감정을 얕게 만들 우려가 있다라고 경고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듯합니다. 이 주장을 좀 과대적용해버리면, 최근 민간 단체나 정부 기관에서 추진하는 것처럼 ‘인터넷/스마트폰 중독 규제’ 쪽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요. 몇 번 되새김질해볼만한 책인 듯해요.

ps: 세간에서는 인터넷/스마트폰/게임 중독으로 한 번에 묶이고 있지만, ‘해당 기기/매체에 오랜 시간을 들인다’라는 현상을 빼면, 인터넷/스마트폰의 속성과 게임의 속성은 상당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인터넷/스마트폰(어쩌면 소셜 미디어도 포함)은 그걸 접하고 있는 사람에게 뭔가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던져주고, 사람은 그 수많은 정보들을 훑고, 자신에게 좀 더 의미 있거나 흥미 있는 쪽을 찾아 ‘건너 뛰는’ 편인데요. 그에 반해 게임은 크게 봐서는 하나의 세계관을 던져주고(물론 세부적으로는 주의 집중을 위해 새로운 것들을 계속 주겠지만요.), 사람은 그 세계에 ‘몰입(집중)’하는 쪽이거든요. ‘뇌에 집중력을 요하는 매체’라는 점만 놓고 보면, 전통적인 게임은 인터넷/스마트폰보다는 오히려 독서 쪽에 가깝지 않나 생각해봤어요.

ps2: 같은 맥락이지만, 전통적인 코어 게이머들이 소셜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을 ‘게임 같지 않다’, ‘가볍다’고 여기는 부분도 이때문일 듯해요. 기존의 전통적인 게임들은 수십 분, 수 시간, 수십 시간 동안 플레이어가 집중력있게 빠져들 것을 요구했거든요. 그에 반해, 최근의 소셜/모바일 게임들은 수십 초-수 분 동안의 플레이에 최적화되어 있고, 그마저도 중간 중간 다른 이벤트들(친구에게 요청 보내기, 자랑하기, 결제하기, 업적 깨기)로 흐름이 끊길 때가 많고요.

ps3: 저자의 주장에는 전부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과다 정보에 따른 피로감’, ‘긴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함’같은 저자의 경험담에는 100% 동의할 수 있었어요. 깨어있는 시간 동안 액정 화면을 끊임없이 바라보며 새로운 정보들을 계속 입력받고 있다 보니, ‘뇌가 쉬면서 그 정보들을 처리할 시간’을 주는 게 좋겠더라고요. 블로그에 일부러 긴 글을 쓰려는 것도, 운동을 시작한 것도,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는 스마트폰의 알림을 모두 꺼버린 것도, 일과 시간 중에 트위터 클라이언트나 페이스북 웹페이지를 되도록 안 띄워놓으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인데요. 당장 효과는 모르겠지만, 반 년 넘게 이렇게 살다 보면 뭔가 변화가 있을 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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