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0001게임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자인 조던 메크너가 만 스무살인 1985년부터 1993년까지 쓴 일기 중 게임 관련 부분을 발췌해서 엮은 책입니다. 어렸을 때 재미있게 했던 게임 중 하나라서 재미있게 읽었어요. ‘엄청난 재능과 뛰어난 직관을 가진 젊은 게임 개발자의 질풍노도 성장담’이라고 정리할 수도 있을 텐데요. 몇 가지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 게임 개발의 재능? – ‘게임 개발하는 데에 필요한 재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하곤 하는데요. 조던 메크너는 부러울 정도로 여러 재능을 한 몸에 갖고 있었습니다. 우선, 좋은/재미있는 게임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잘 정의할 수 있었고, 플레이어에게 어떤 경험을 줄 것인지를 늘 고민했어요. 여기에 프로그래밍을 자신이 직접했고요. 영화학도이다 보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어떤 애니메이션이 들어갈 지 고민하고, 이를 촬영하고 디지타이즈해서 게임에 넣는 것까지 모두 처리했죠. 게다가, 오프닝 씬이나 패키지 디자인, 광고 문구도 일부 손봤고 말이죠. 게임 산업이 발전하면서 분업화된 면도 있지만, 요새로 따지자면 게임 디자이너, 엔지니어, 그래픽 아티스트, 애니메이터, 프로듀서, 마케터의 재능을 한 몸에 갖고 있는 셈이라 많이 놀랍더라고요. 책의 중반부까지도 ‘난 게임을 만들어야 할까, 아니면 영화 각본가의 길을 가야 할까’하며 고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런 고민이 큰 자산이 되었던 것 같아요.

* 함께 일한다는 것 – 그렇다면 ‘페르시아의 왕자’는 능력있는 1인 개발자의 산물인가..하는 질문도 던져볼 수 있을 텐데요. 조던 메크너의 역할이 어마어마하게 컸고 굉장히 중요하긴 했지만, 1인 개발이라고 볼 순 없었죠. 우선 출시/유통을 위해 브로드번드 사와 계약을 했고, 프로젝트 매니저와 일정에 대해 끊임없이 논의했고, 자주 충돌하긴 했지만 마케팅 부서와 출시 전략에 대해 계속 얘기했고, 다른 플랫폼으로도 출시하기 위해 여러 프로그래머들과 외주 계약을 진행했고, 아트/패키지 관련해서 그래픽 아티스트와도 일해야했죠. 남이 아닌 아버지이긴 했지만, 음악/사운드 관련해서도 다른 사람의 손을 써야했고, 테스트 관련해서는 QA팀과도 계속 얘기를 했고요. 10대에 이미 ‘카라테카’라는 성공작을 만들었고, 혼자서 거의 모든 것을 만들어낼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게임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여럿이 함께 일해야했죠. 자신과 비전이 다름에도 같이 일해야 하는 사람들과 툭닥거리고 성장하면서 원하는 바를 얻어가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책의 후반부, 즉 이미 성공한 후에 20대의 자아를 찾아 이리저리 방황 또는 유람하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긴장감이 떨어지지만(부럽다고요!), 게임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몇 년 동안 끊임없이 불안해하면서도 꾸준히 게임을 만들어가는 중반부까지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굳이 게임 개발하시는 분들이 아니더라도, 뭔가를 만드시는 분들이라면, 아니 그냥 뭔가 꿈을 좇는 분들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듯해요.

ps1: 책을 읽다 보면 조던 메크너보다 뛰어난 개발자도 많았겠지만, 그 시절 ‘페르시아의 왕자’, 즉 애니메이션을 대폭 강화하고 한정된 레벨에서 스토리 텔링을 얹은 플랫폼 게임은 그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게임과 영화 양쪽 모두 진로로 생각할 만큼 고민도 많이 했고 쌓아둔 자산이 많았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던 게임이라고 봐요. 그렇다면 ‘게임 개발자로서 나의 자산은 무엇인가’하는 고민이 들더라고요. 물론, 지금까지 ‘어떤 게임을 만들더라도 내 취향이나 나만의 재미는 녹아들어간다’라는 생각을 하고 살긴 했지만, 몇 년간의 개발 경험을 빼고 나면 ‘나만이 만들 수 있는 게임, 그 게임에 들어갈 내 자산’은 무엇인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이 책을 읽은 사람들 대부분이 같은 생각을 하겠지만, 역시 일기를 써야할까봐요. 뭔가 명확해지는 것이 있겠죠.

ps2: 책은 iBooks로 읽었어요. 한정 수량으로 나온 인쇄본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iBooks에서는 주석 처리나 게임 개발 노트, 동영상, 스케치 등을 링크로 바로 볼 수 있어서 아주 좋았네요. 앞으로도 이런 형태의 전자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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