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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 포스트를 샀습니다. 인터넷 시대의 거물이 최고의 언론을 사들인 것이라 이런 저런 얘기가 많은데요. ‘신문이 인터넷 업계에 팔리다니 종이 신문의 위기다.’라고 보는 사람들과 ‘베조스가 워싱턴 포스트로 무엇을 할까?’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일단 후자 쪽입니다.

제프 베조스는 워싱턴 포스트를 갖고 무엇을 하려고 샀을까요? 워싱턴 포스트에 무엇을 바라는 걸까요?

베조스 본인이 워싱턴 포스트 직원들에게 쓴 공개 편지에서 그 단서를 찾아봤습니다. 이전 사주에 대한 감사와 사주 교체에 따른 직원들의 우려 해소, 언론 매체로서의 기본 자세 유지를 빼고 나니, 제 눈에 들어오는 건 요 부분이었습니다. (굵게 표시한 부분은 제가 따로 강조한 것입니다.)

I would highlight two kinds of courage the Grahams have shown as owners that I hope to channel. The first is the courage to say wait, be sure, slow down, get another source. Real people and their reputations, livelihoods and families are at stake. The second is the courage to say follow the story, no matter the cost.

즉, 기사를 쓸 때 (1) 속도보다는 정확성 (2) 비용보다는 읽을 가치가 있는 스토리를 쓰라는 주문입니다. 전 이런 것들이 베조스가 워싱턴 포스트에 바라는 핵심 내용이라고 봤어요.

어차피 ‘빠르기’로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에 기존 언론이 당해낼 수 없습니다. 대신 소셜 미디어는 종종 부정확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때가 있는데, 워싱턴 포스트는 느려도 되니 여러 소스를 확인해서 정확한 것만 쓰라는 겁니다.

또한 ‘양’으로도 소셜 미디어나 1인 저널리스트 블로그를 기존 언론이 따라가기는 힘듭니다. 누구나 전세계에 글을 전달할 수 있는 시대니까요. 대충 이것 저것 짜깁기해서 써올리는 글은, 누구나 아니 심지어 프로그램도 쓸 수 있는 시대죠. 하지만, 심층 취재/분석하는 글은 쓰는 데에 시간과 돈이 필요합니다. 그런 비용을 들여도 되니 이야기를 파고들 것을 주문하는 것입니다.

‘(느리고 양은 적을지 몰라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정확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가 워싱턴 포스트의 정체성이 되는 셈인데요. 그럼 그런 글들을 어떻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수익을 낼 셈인 걸까요? 그 또한 편지에 살짝 드러나있습니다.

Our touchstone will be readers, understanding what they care about – government, local leaders, restaurant openings, scout troops, businesses, charities, governors, sports – and working backwards from there.

‘중요한 것은 독자이고, 독자가 원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겠다.’ 어떻게 보면 뻔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사용자 맞춤형 상품 추천 알고리듬과 그에 따른 사용자 취향 데이터베이스 축적에 있어서 세계 최고인 아마존의 베조스가 저런 말을 하니 무게가 완전히 다르네요.

독자가 어떤 글을 좋아했는지, 어떤 분야에 관심있는지, 어느 지역에 사는지, 나아가 독자가 아마존에서 어떤 상품을 구입했는지, 즉 소비자로서의 관심사는 어느 쪽인지에 맞춰, 해당 독자들이 (돈을 주고 구입할 정도로) 관심있어할 글을 써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특정 독자들에게 맞춤형’인 ‘조금 느리지만 대신 정확하고 깊이 있는 정제된 글’을 쓰고 나면, 베조스는 수백 만대 팔린 킨들 등 아마존의 인프라를 활용해 워싱턴 포스트의 글을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판매할 수 있습니다. 킨들을 켜면 그날그날 관심사의 기사들이 배달되는 월정액 서비스가 가능할테고(예: 농구 유니폼을 산 적이 있는 고객에게 NBA 플레이오프 심층 분석&인터뷰 기사 제시), 심층 기사들의 낱개 판매, 또는 얇은 단행본 정도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또는 반대로 워싱턴 포스트의 글에 아마존의 관련 상품을 링크로 거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예: 국제 분쟁 기사에 관련 참고 도서 제시). 뭐, 아마존 고객 데이터의 활용까지는 갈 길이 멀 수도 있겠지만, 가능성은 무궁무진해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거칠게 요약하면, 이번 제프 베조스의 움직임은 ‘어떤 주제가 잘 팔릴 지는 내가 알려주겠다. 워싱턴 포스트, 니넨 그 주제에 대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정확하고 깊이있는 글을 써라. 그럼 내가 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니네 글을 잘 팔아주마.’ 정도가 될 듯한데요. 제프 베조스가 얘기한 뉴스 업계의 invent와 experiment가 어떤 것들이 될 지 기대해봅니다.

ps: 아마존이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한 것이 아니라, 제프 베조스 개인이 사들인 것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두 회사의 통합 효과를 바로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다만,  Wired 기사 ‘Jeff Bezos Bought The Washington Post. But So Did Amazon’에서 지적한 것처럼 아마존의 이사회가 수익 감소 중인 종이 신문사를 인수하는 것에 거부감을 표했을 가능성이 있고, 조직 개편을 통해 워싱턴 포스트를 바로 흔들기보다는 둘을 독립적으로 굴리면서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려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의 CEO이자, 워싱턴 포스트의 사주로서, 언젠가는 둘을 제대로 통합할 것이라고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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