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25_00011

툼 레이더가 처음 나온 1996년은 제가 게임을 그리 즐기지 않을 때였습니다. 어떤 게임인지 대충은 알고 있고 툼 레이더 시리즈도 조금 해봤지만, 출시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을 줬을지, 이후 ‘퍼즐+3인칭 슈터’ 게임에 끼친 막대한 영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현재의 저로서는 정확하게 느낄 수 없습니다.

그래서, 2013년, 툼 레이더가 새롭게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관련 트레일러들을 보면서도, “장르를 다시 정의한 걸작이 드디어 리부트!”라는 기대감보다는 ‘어차피 콘솔 게임에 이미 흔한, 이곳 저곳 뛰어다니면서 길 찾고 퍼즐 몇 개 풀고 중간중간 영화같은 컷씬 좀 보다가 적들을 쏴대는 그런 게임 또 하나 나오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주일 남짓 모든 시간을 짜내서 엔딩을 보고 난 지금, 누군가 제게 이 게임이 무슨 게임이냐고 물어온다면, 그 대답은 여전히 ‘이곳 저곳 뛰어다니면서 길 찾고 퍼즐 몇 개 풀고 중간중간 영화같은 컷씬 좀 보다가 적들을 총으로 쏴대는 그런 게임’일 것입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겠죠. “정말 끝내줘요. 꼭 해보세요!”

툼 레이더는 완전히 새롭지는 않습니다. 퍼즐 요소가 있는 3인칭 슈터는 이미 시장에 흔한 장르이고, 영화 같은 카메라 연출과 컷씬 동영상, 끝내주는 그래픽, 박진감 있는 사운드, 적당히 재미있는 퍼즐, 손맛 좋은 전투와 제법 똑똑한 AI, 세련된 UI, 그럴싸한 스토리와 게임에 어울리는 스토리 텔링 방식, 그에 맞춘 일방향 진행 등은 다른 게임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툼 레이더는 특별합니다. 좀 전에 열거한 게임의 모든 요소들을 이 정도 경지까지 올린 게임은 흔치 않습니다. 더구나, 이 모든 요소들을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어떤 감정으로 해당 경험을 해야하는지에 맞춰 정교하게 배치하고 균형있게 갈고 닦아낸 게임은 더더욱 흔치 않습니다. 아니, 이 정도까지 끌어올리고 균형을 맞췄던 게임이 있긴 했었을까요?

툼 레이더 오리지널의 팬이 아닌 저로서는, 이 리부트 버전이 오리지널을 잘 계승했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리부트 버전 또한 오리지널 버전처럼 게임개발사들에서 “그.. 툼 레이더에서 했던 방식 있잖아.”, “아, 이 부분은 툼 레이더의 그 부분처럼 말야.”라며 레퍼런스가 될 것이라는 점만은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을 듯합니다.

게임을 별로 안 해보신 분들, 툼 레이더를 해보세요. 현시대 게임이 도달한 기술적, 예술적 성취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게임을 만드시는 분들, 툼 레이더를 해보세요. 플레이어의 감정선을 다루는 것에 있어 각자의 파트에서 모범 답안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일상의 무료함에 지치신 분들, 툼 레이더를 해보세요. 신비하고도 음산한 섬에 조난당한 라라 크로포트와 함께 때론 짜릿하고 때론 비릿하고 때론 톡 쏘는 모험을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맛들을 즐기겠지만, 얼굴을 찌푸릴 일은 없을 거에요. 마치 잘 차린 정식 풀코스를 먹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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