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0월 31일, 국회에서는 게임을 술, 도박, 마약과 함께 관리 대상으로 선정한 ‘4대 중독 예방 관련 법률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TIG의 생중계 기사를 통해 볼 수 있었는데요. 전체 패널 선정이나 진행에 있어서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당황스러웠던 것은 인천 성모 병원 정신과의 기선완 교수의 발언이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자유 토론 시간의 ‘인터넷 중독과 게임 중독의 자료가 뒤섞여 있다’는 지적에 대해 “보건의료전문가와 정신과 의사가 게임을 중독이라고 하는데, 게임업계가 이를 아니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답변했다는데요.

그래도 몇 년 동안 게임을 만들면서 게임에 대해서 고민해왔던 저는, 게임의 중독성에 대해 학계의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잖이 당황스러웠습니다.

물론 각 분야의 전문가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몇십 년동안 해당 분야에서 힘써온 전문가들의 영역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고, 전문가가 소수이고 대중이 다수라고 해서 전문가가 아닌 대중의 주장이 옳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대중에게 대중의 언어로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전문가의 역할이기도 하겠지만, 분명 쉽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저만 해도 학부에서 지질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고생물학을 전공했는데, 누군가 제게 지구는 ‘수천년 전에 생성됐다’, ‘진화는 거짓말이다’ 같은 말을 들고 오면 어디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거든요.

다만, 이것이 지나쳐 전문가의 권위를 지나치게 내세우는 것 또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과학에서는 현재 가장 합리적이고 옳다고 여겨지는 이론도, 반론이나 해당 가설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쌓이고 이를 좀 더 잘 설명하는 가설이 등장할 경우 폐기될 수도 있으니까요. 특정 주장이 도그마로 받아들여질 때의 위험성까지는 얘기할 생각이 없지만, 도전받지 않는 전문가 집단의 위험성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죠.

이때문에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료 평가, 즉 peer review입니다. 특정 의견이 그 의견이 가지는 합리성 이상의 힘을 갖는 것을 막고 학문을 건강하게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것이 동료 평가인데요. 이런 동료 평가를 통해 검증된 것이라면 해당 전문가 집단 밖에서도 안심하고 믿을 수 있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게임 중독에 대해 의학계의 동료 평가를 찾아보고자 했습니다. 일반 생물학을 공부한 게 전부인 저는 사실 의학계에는 문외한이나 다름 없고, 그래서 시작은 위키피디아입니다.

위키피디아의 video game addiction 항목에서는 이런 저런 얘기들과 함께 인터넷 게임이 2013년 5월 질병 어쩌고에 추가됐다는 구절이 눈에 띕니다. 그래서 이동한 페이지가 위키피디아의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항목입니다. ‘정신 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이하 DSM)’으로 옮길 수 있는 이 책은 미국정신의학학회(APA)에서 펴내는 책인데, 여러 정신 질환을 분류하고 그 표준 기준을 일상 언어로 기술하고 있다고 합니다. 즉, 환자의 증상을 보면서 이 증상들이 해당 질환에 해당하는지 진단할 수 있는 편람이라는 소리인데요. 임상의나 연구자, 정신의학 약물 규제국, 건강 보험 회사, 제약 회사, 법조계, 정책 입안자 등이 사용한다고 하니, 현재 미국의 정신 질환 기준서로 보면 될 테고, 의학계의 동료 평가로서 부족함이 없을 듯합니다.

이 편람은 비정기적으로 출판되는데, 1952년 1판(DSM-1)에 이어 몇 차례 개정판이 나왔고, 가장 최신판은 올해 2013년 출간된 DSM-5입니다. 인터넷 게임 중독이 여기에 추가됐다는 얘기가 있으니 좀 미국정신의학학회 홈페이지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목차를 통해 살펴보면요.

편람은 크게 다음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섹션 I: 서론과 편람 사용법, 주의 사항 등
* 섹션 II: 진단 기준과 (질병) 코드
* 섹션 III: 최근 진단법(measure)과 모델

목차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편람의 핵심은 섹션 II입니다. 현재 공식적으로 정신 질환으로 인정된 모든 질환의 대분류, 소분류가 적혀있는데요. 아마도 내용은 각 질환의 증상과 진단이겠죠. 중독에 대한 부분도 있는데, 물질 관련 중독 질환 Substance-related and addictive disorders이라는 대분류 안에 물질 관련 질환(알콜, 카페인, 대마초 등등등)과 비물질 관련 질환이라는 소분류가 있습니다. 그리고 비물질 관련 질환에는 도박 질환이 있습니다. 게임 중독은 비물질 관련 질환일 텐데, 이쪽에는 아직 등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질병 코드가 없고, 미국정신의학학회에서 아직 공식 질환으로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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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중독이 실려 있는 부분은 섹션 III입니다. 섹션 III는 새로운 진단법이나 공식 질환은 아니지만 질환으로 주장하는 경우가 있어서 고려 대상인 주제들을 싣고 있습니다. 다음의 목차를 보시면요.

131031code2섹션 III의 Conditions for Further Study(추가 연구 필요한 상태)에 Internet Gaming Disorder(인터넷 게임 질환) 항목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편람은 없는 상태라서 어떤 얘기가 실려있는지 알 수 없지만, 다행히도 미국정신의학학회 쪽에서 해당 부분을 따로 Internet Gaming Disorder라는 PDF로 내놨더라고요.

한 장짜리라 간단하게 전문을 번역해봤습니다. (제가 의학 지식이 부족해서 잘못 옮긴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역 지적해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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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fifth edition of the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5), Internet Gam- ing Disorder is identified in Section III as a condition warranting more clinical research and experience before it might be considered for inclusion in the main book as a formal disorder.

정신 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 5판 (DSM-5)에서 인터넷 게임 질환은 섹션 III에 ‘공식 질환으로 주 편람에 포함 여부를 고려하기 전에 좀 더 임상 연구과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상태’로 동정/기술했다.

A New Phenomenon

새로운 현상

The Internet is now an integral, even inescapable part of many people’s daily lives; they turn to it to send messages, read news, conduct business and much more. But recent scientific reports have begun to focus on the preoccupation some people develop with certain aspects of the Internet, particularly online games. The “gamers” play compulsively, to the exclusion of other interests, and their persistent and recurrent online activity results in clinically significant impairment or distress. People with this con- dition endanger their academic or job functioning because of the amount of time they spend playing. They experience symptoms of withdrawal when kept from gaming.

인터넷은 현재 많은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 필수적이며, 심지어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메시지를 보내고 뉴스를 읽고 업무를 수행하고 그외 많은 일들을 한다. 하지만 최근 연구 보고서들은 일부 사람들이 인터넷, 특히 온라인 게임의 특정한 면에 집착하는 것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게이머”는 강박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해서 다른 곳에는 흥미를 주지 않는다. 이들은 쉬지 않고 반복적으로 온라인 활동을 하고, 이에 따라 임상적으로 중요한 손상이나 고통에 이른다. 이런 상태의 사람들은 게임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학업이나 직무 수행을 위험에 빠뜨린다. 이들은 게임을 하지 못하게 할 경우 금단 증상을 겪는다.

Much of this literature stems from evidence from Asian countries and centers on young males. The studies suggest that when these individuals are engrossed in Internet games, certain pathways in their brains are triggered in the same direct and intense way that a drug addict’s brain is affected by a par- ticular substance. The gaming prompts a neurological response that influences feelings of pleasure and reward, and the result, in the extreme, is manifested as addictive behavior.

이러한 서술의 상당 부분은 아시아 국가 증례들에 기원하며 주로 젊은 남성들을 중심에 두고 있다. 관련 연구들은 이런 개인들이 인터넷 게임에 몰두하면, 이들의 뇌의 특정 경로가, 특정 물질에 영향을 받은 약물 중독자의 뇌가 그런 것과 동일하게, 직접적이고 강렬한 방식으로 촉발된다고 말한다. 게임은 기쁨과 보상에 대한 감정에 영향을 끼치는 신경학적 반응을 촉발하며, 그 결과 극단적인 경우 중독 행동으로 발현된다.

Further research will determine if the same patterns of excessive online gaming are detected using the proposed criteria. At this time, the criteria for this condition are limited to Internet gaming and do not include general use of the Internet, online gambling or social media.

추후 연구는 앞서 제안된 기준을 사용해 온라인 게임을 과도하게 했을 때 같은 패턴이 발견되는지를 밝힐 것이다. 현재, 이 상태를 위한 기준은 인터넷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에만 한정하고, 일반적인 인터넷 사용이나, 온라인 도박, 또는 소셜 미디어는 포함하지 않는다.

By listing Internet Gaming Disorder in DSM’5 Section III, APA hopes to encourage research to determine whether the condition should be added to the manual as a disorder.

인터넷 게임 질환을 DSM 5의 섹션III에 등재함으로써, 미국정신의학학회(APA)는 해당 상태가 편람에 질환으로 추가되어야 하는지 가릴 수 있는 연구들을 권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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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기까지가 일단 제가 살펴본 상황입니다. 이 자료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개인의 입장에 따라 조금 다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바라보는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인터넷 게임 중독에 대해 주로 아시아, 젊은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많은데, 게임 시간이 많고 강박적인 모습, 금단 현상, 약물 중독의 뇌 작용과 동일함 등의 증상이 있다고 함.

2. 이에 따라 미국정신의학학회는 현재 인터넷 게임 중독을 ‘공식 정신 질환의 전단계’, 즉 정신 질환으로 보고하는 연구들이 있으나 이를 공식 질환으로 넣으려면 같은 기준, 같은 결과를 보이는 추가 연구들로 검증되어야 하는 증상으로 보고 있음.

3. 이 추가 연구들은 같은 기준, 즉 온라인 게임에 한정해서 연구해야 함. 즉, 일반적인 인터넷 사용, 또는 인터넷 도박, 소셜 미디어 사용은 같은 기준에 들어가지 않음.

1번은 아무래도 중국과 우리나라의 논문들인 것 같고요. 이런 연구 결과들이 많다 보니 이번에 섹션 III에 올려 좀 더 연구해서 추가 검증해보자는 게 미국정신의학학회의 현재 입장인 모양입니다.

한참을 돌아왔는데요. 이제 결론을 내려보죠.

“보건의료전문가와 정신과 의사가 게임을 중독이라고 하는데”라는 말에 대해 학계의 동료 평가를 찾아보고자 했습니다. 미국정신의학학회의 정신 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을 찾아봤더니 공식 질환의 중독 분류에서는 빠져 있었습니다. 인터넷 게임 중독이 들어있는 부분은 섹션III, 추가 연구를 통해 다음 편람때 공식으로 넣을지를 결정한다는 것이었고요.

이 정도면 ‘의학계에서도 논란 중이다.’라고 말해도 되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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