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XCOM Enemy Unknown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턴마다 4-6명의 특수부대를 움직여 외계인과 싸우는 게임인데요. 고전 게임을 리부트한 게임이지만, 오리지널을 안 해본지라 신기해하며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감상들을 살짝 옮겨보면요. 몇 번 실수 하면서 베테랑들이 다 죽어나갔고, 그 뒤로는 계속 신병들이 계속 전멸.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차분하게 시작했습니다. 게임 처음 할 때만 해도 ‘결국 장기 같은 것에 연출 붙인 것 아닌가.’ 정도로 폄하할 뻔 했지만, 할수록 빠져드네요.

AI도 인상적이고, 턴 방식임에도 긴장감 있게 만드는 등 게임 전반적으로 굉장히 훌륭한데요. 저는 특히 캐릭터에 감정 이입하게 만드는 부분이 참 좋더라고요. 대체 이 ‘장기말’에 불과한 것에 왜 감정까지 이입하게 되는지 플레이하면서 계속 생각해봤는데요. 지금까지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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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I를 통한 개연성 있는 행동: 한 턴의 행동을 통해 적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거나, 적을 맞히거나, 빗맞히거나 했을 때, 해당 전황과 관련해 독백 형태로 다른 팀원들 소통하는데, 이게 참 그럴싸해요. 예를 들어 “쉿, 저쪽에서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아니면 “경계 사격! 조심해, 녀석이 아직 살아있어!” 같은 것들이죠. 여기에 신병은 불리한 전황에서 혼란에 빠지는데요. 이때 “으아아악, 이 곳에서 도망칠 테야.”같은 대사를 하면서 명령을 듣지 않거나, 제멋대로 이동하거나, 심한 경우 아군에게 사격을 하기도 하죠. 이런 것들이 꽤 그럴싸해서 보고 있으면 단순한 수치의 조합이 아닌 깊이가 있는 캐릭터로 느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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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장: 각 전투가 끝나고 나면 성과에 따라 각 캐릭터는 진급하고 새로운 기술을 갖게 됩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신병으로 들어왔으나 일병이 되며 분과(돌격병, 지원병, 저격병)가 생기고, 이후 상병, 병장, 소위 등등으로 올라가면서 양자택일 형태로 특수기술을 선택하게 됩니다. 요 부분은 롤플레잉 게임과도 비슷한데, 자신이 직접 ‘키워냈고’, 그래서 ‘특별한 능력’을 가진 ‘계급이 높은’ 캐릭터에는 애착을 갖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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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잃었을 때 페널티 큼: 2번과 통하는 얘기지만, 잘 키워냈을 때의 매력이 큰 만큼 잃었을 때의 페널티 또한 크기 때문에 잃지 않기 위해 굉장히 애지 중지하게 됩니다. 글 초반에 적은 것처럼 처음 할 때 어느 정도 진행한 다음 어설프게 달려들었더니 베테랑 병사를 다 잃어서 게임 진행이 어려울 정도였어요 (결제로 전사자를 부활시킬 수 있었다면 분명 지불했을 듯;;). 덕분에 게임을 다시 시작했을 때는 베테랑들을 잃지 않기 위해 한 턴 한 턴 정말 신중하게 되었는데요. 그렇게 캐릭터와 유대감이 높아지더군요.

4.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캐릭터의 이름, 국적, 인종, 피부색, 얼굴, 머리 스타일, 머리색 등을 모두 바꿀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걸 바꿀 수 있게 해놓은 건데요. 처음 볼 때만 해도 ‘아니, 이게 무슨 심즈도 아니고, 코어한 전투 게임인데 캐릭터가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어차피 전투복인데 외형 꾸미기라니, 이거 오버 스펙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어느 순간 캐릭터들의 머리색을 맞추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기능적으로 필요(예: 누가 누군지 모르겠으니 저격병은 노란 머리로 맞추자.)해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여러 명 머리 색을 맞춰주기도 하고, 서로 비슷한 외모로 만들어 설정 놀이(예: 저격병 형제, 한 명이 중화기로 엄호해주고 다른 하나가 돌격하는 커플이라던가)도 하게 되고, 아끼고 싶은 캐릭터는 눈에 확 띄는 외모로 만들고 하게 되더라고요. 물론 여기에 들이는 시간 모두가 캐릭터와의 유대감과 이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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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투 컷신: 마찬가지로 처음엔 턴 방식의 전투에 일종의 보상 정도로만 생각했는데요.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캐릭터의 활약 장면 또는 전사 장면을 클로즈샷으로 잡아주면서 2번과 3번의 효과를 강화시키는 쪽으로 더 맞춘 것 같아요.

처음에 XCOM Enemy Unknown을 할 때는 AI나 코어한 디자인에 대해 주로 감탄할 거라 예상했는데 캐릭터에 깊은 인상을 받다니 참 뜻밖이에요. 그것도 그냥 부차적인 요소로 들어간 게 아니라 “플레이어들이 병사를 단순한 소모품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어. 키우면서 재미를 느끼고, 잃었을 때 크게 상심하면 좋겠어. 그러려면 우린 어떤 시스템들을 만들어야 할까?”라는 문제 의식에서 열심히 고민해서 만든 것 같더라고요.

다음에 좀 더 써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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