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주제를 놓고 48시간 동안 사람들끼리 모여 게임을 만드는 글로벌 게임 잼이라는 행사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오디션 프로그램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데, 참가자 전원에게 팀 미션이 나오고 제한 시간 동안 미션에 맞는 게임을 만드는데 탈락은 없고 참가자들이 서로 평가하는 자리라고 봐도 될 것 같아요.

저는 지난 1월 24일부터 26일까지 글로벌 게임 잼@판교 행사에 참석했는데요. 그 결과 다른 분들과 함께 Peeping Medusa (링크)라는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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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물도 만족스러웠지만 그 과정도 정말 재미있었고, 그래서 게임 주제 공개/제작/제출까지 총 44시간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기록으로 남겨봅니다. 앞서 말씀드리면 전 팀에서 게임 디자인과 프로젝트 관리를 맡았고, 그래서 이후의 글도 주로 제 입장에서 적겠습니다.

H-44 주제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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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7시 반 정도에 공개된 올해의 주제였습니다. 어감을 정확히 잡기 어려운데 우리말로 옮기자면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입장에서 본다.” 정도가 될 텐데요. 굉장히 울림이 있는 말이지만, 이걸 게임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너무 갑갑하더라고요. 이 주제에 맞는 게임이 대체 뭐일지 바로 떠오르는 게 없더라고요. 같이 공개된 다양화 요소들을 봐도 딱히 이거다 싶은 게 없고 말예요. 다행히도 주최 측에서는 참가자 전원의 브레인 스토밍을 진행했습니다.

H-43 전체 브레인스토밍

ggjremaster.001전체 브레인스토밍은 이렇게 40여명의 참가자 전원이 포스트잇을 들고 주제에 대해 생각나는 것을 되는 대로 적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한 10여장 정도 붙였었는데요. 붙이면서도 ‘아, 이거 주제문에 집중하면 뭔가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게임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뭐 할 지 망설이다 시간만 보내고 별 것 안 나올 확률이 높겠다’ 싶더라고요.

불안한 마음으로 다른 분들 것도 봐가면서 그렇게 한참을 붙여나가다 보니, 제가 붙인 세 장이 눈에 같이 들어오더라고요. 주제문에서 제가 뽑아낸 키워드,  ‘편견’, 그리고 주제문을 문자 그대로 옮긴 ‘내 눈으로 남을 보면 남이 내가 된다’는 얘기를 좀 재미있게 만들어본 ‘눈에서 빔나가면 적이 내 모습으로 바뀜’, 그리고 눈에서 빔 나간다고 하니 생각난 ‘메두사’. 어, 여기까지 해놓고 보니 뭔가 말이 될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메두사는 사람들의 편견으로 본 메두사일 뿐이고, 실제 메두사는 그렇지 않았다면 어떨까… 같은 얘기 말예요.

이후 순서는 전체 브레인스토밍에서 자신이 생각한 러프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전체 참가자에게 공유, 피드백을 받는 자리였습니다. 엔지니어 28명, 아트 13명, 게임 디자이너 6명, 사운드 디자이너 1명이 모인 자리에서 게임 디자이너로서 쓸만한 러프 아이디어는 뽑아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좀 절박해졌습니다.

H-42 전체 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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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가 1차로 정리한 게 이건데요. 실제 발표할 때까지 남은 시간 동안 이것 저것 좀 더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피치 때 정확히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때만 해도 주인공은 메두사가 될 것이고, 메두사가 바라보는 모든 것이 돌이 되기 때문에, 메두사는 돌만 보고 살아야 한다, 그러니 귀여우면서도 좀 슬프거나 외롭거나 처연한 느낌의 메두사를 보여준다 정도로 게임에 대해 얘기했던 것 같아요.  덧붙여서 GGJ 쪽에서 준비한 다양화 요소 중 절차적 생성이나 벡델 테스트 등을 써볼 거라는 얘기도 하고 예전에 이러저러한 게임 만들었으니 잘 부탁한다는 얘기도 했던 기억이네요.

종이 아래 쪽에 있는 파란색 스티커는 아이디어를 듣고 ‘괜찮다’고 생각한 참가자들의 숫자입니다. 48명 중 22명이 괜찮다고 해주니, 이 정도면 일단 이 아이디어로 팀을 만들 수는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이 발표하는 동안 메두사 아이디어를 좀 더 구체화했습니다.

H-41 팀 빌딩

1390708786150전체 피치가 끝나고 팀을 이룰 시간이었습니다. 팀을 제가 꾸려본 적도 없고 해서, 그냥 앞의 저 종이를 들고 “메두사 하실 분?”을 외쳤습니다. 주변에 있던 다섯 분이 오셨습니다. 저 포함해서 여섯 명. 게임 잼 같은 행사에서 잘 굴러갈 수 있는 최대의 인원 여섯 명이 됐습니다. 파트를 확인했습니다. 게임 디자인 1명, 엔지니어링 2명, 아트 2명, 사운드 디자인 1명. 어? 이건 왠 풀파티??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인원과 최적의 구성이 바로 갖춰졌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다들 베테랑이시거나 학생이라도 센스가 좋으셔서 단순히 구성만 좋은 게 아니라 역량도 대단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담감도 확 늘었는데요. 사람이 적다는 핑계도, 파트 균형이 안 맞는다는 핑계도, 개개인의 경험이나 역량이 부족하다는 핑계도 댈 수 없게 되었거든요.

H-41 팀 대상 2차 피치 & 비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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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모여 앉아 간단하게 자기 소개하고 바로 게임 얘기로 들어갔습니다. 팀 분들은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듣고 싶어하셨고, 그래서 전체 피치 후에 정리한 것을 말씀 드리고, 팀 분들이 궁금해하는 것 얘기하시면 저도 좀 생각하고 메모하고 그러면서 완성품의 모습을 같이 그렸어요. 위에 연습장 두 페이지에 적어둔 게 그건데요. 시작은 제가 했지만 이분 저분들의 아이디어들이 섞여가고 있어서 이때부턴 하나의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아요.

제가 2차 피치때 준비한 게임은 ‘메두사로 플레이하는 게임’인 것 전체 피치 때와 동일하지만, 전체 피치 때는 신전을 방어한다는 느낌이었지만 이때는 일종의 잠입 게임을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재미있게 했던 툼레이더의 잠입 요소(툼레이더: 게임 AI와 잠입 플레이 참고)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잠입이긴 한데 적을 해치운다기보단 들키면 안 되는 느낌으로 좀 비틀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메두사는 저주에 걸리기 전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움 또는 생명체를 좋아하는데, 마주 보면 생명체가 돌로 바뀌니까 뒤에서 몰래봐야 하는 설정이면 얘기와도 좀 맞을 것 같았고요.

덕분에 룰도 좀 정리할 수 있었는데, 메두사의 체력은 상대를 훔쳐보는 동안에는 증가, 훔쳐보던 상대가 뒤돌아봐서 돌이 되면 감소, 또는 공격당하면 감소, 요렇게면 일단 괜찮아 보이더라고요. 이걸 판정하려면 몹에는 시야나 범위가 있어야 하고, 범위 안에 메두사가 있는 걸 눈치채면 돌아본다거나 공격하거나 도망치거나 그래야겠죠. 결국은 메두사의 체력을 관리하는 게임이죠. 체력이 0이 되면 게임 오버, 오래 버티는 사람이 최고 점수.

여기에 게임 오버 엔딩 씬으로 게임의 주제를 풀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주변이 모두 돌로 변해서 메두사가 더 볼 게 없으면 외로워서 자신을 거울로 봐서 게임 오버. 아니면 몹들에게 공격당해서 게임 오버. 몹들, 특히 인간에게 죽을 때는 좀 더 비참하게 만들어도 될 것 같았어요. 인간들끼리 키득거리면서 “우리가 그 괴물을 잡았다구!”외치는 느낌을 주면 좋겠더라고요. 게임하면서 사람들을 돌로 안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가 그 사람들한테 ‘괴물’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플레이어로서는 꽤 억울할 것 같기도 해고요.

이런 기본 틀에 보조 조건으로 나온 필드 절차적 생성이나, 벡델 테스트, 오디오 입력해서 플레이어가 노래 불러주면 메두사가 따라 부르며 체력 회복 등등 몇 가지 아이디어를 더 붙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렇게 대충 어떤 게임을 만들 지는 공유가 됐으니, 다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툴로 어떤 모습을 그릴 것이냐는 부분이 문제였죠. 디바이스 결정은 생각보다 간단했는데 기반 작업을 시작하실 엔지니어 분이 바닥부터 작업하는 것이 이번 게임 잼의 목표라서 가장 익숙한 윈도 쪽으로 하신다고 하더라고요. 2D/3D도 얘기도 잠시 나왔지만, 대체로 3D보단 2D에 경험이 많았으니 익숙한 2D로 가기로 했어요.  시점을 아이소메트릭으로 할 지도 잠시 고민했는데, 메두사 조작이 아마 키보드 상하좌우 정도일 텐데 괜히 방향을 헷갈리게 할 필요가 없을 듯했어요.

즉 우리가 만들 게임의 뼈대는 ‘2D 격자 미로 속에서 적을 몰래 지켜보는 게임’이라는 것으로 정한 거죠.

H-40 팀내 협업툴 / 의사소통 도구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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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공개가 저녁 7시 반, 팀 구성된 게 밤 9시 반 정도. 뭘 만들지를 얘기하고 나니 벌써 밤 11시가 다 되어 가더라고요. 뭘 만들지는 서로 대략 알게 됐고, 일단 아침까지 v0.1을 만들어서 최소한을 보면서 얘기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어요. 실제 일을 시작하게 되니 필요한 건 팀내 협업툴과 의사소통 도구. 엔지니어 분들은 두 분 서로 협업할 수 있게 bitbucket 만드셨고, 전체가 쓸 수 있는 도구로는 페이스북 비공개 그룹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사람이 적고 규모가 작은 프로젝트 용으로 짧게 쓰기에는 페이스북 그룹을 능가하는 도구를 아직 본 적이 없거든요. 글 올릴 수 있고, 사진 올릴 수 있고, 파일도 올릴 수 있고, 답글 달 수 있고, ‘좋아요’도 누를 수 있잖아요. 물론 사람이 많아지거나 지난 이력을 조회해야 한다면 불편한 점이 많아지지만요. 인사 빼곤 서로 아는 것도 없는데 이 참에 페이스북 친구도 되고요.

이때의 목표는 ‘내일 아침에 프로토타입을 확인하자’였어요.  v0.1, 즉 가장 기본적인 맵이랑 조작 시스템, 그리고 아트 방향 설정하고 기본 아트 얹는 정도를 만들자는 거였고요. 막차 시간도 다가오고 해서 가실 분들은 우선 가시고, 몇 분은 남아 조금 더 진도를 나갔습니다.

H-34 게임 디자인 쳐내기 & 뼈대 완성

GDD다른 분들이 엔지니어링 뼈대, 아트 컨셉을 잡고 있을 때, 저는 게임 디자인 문서를 만들었습니다. 대충 방향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적어야 빠진 부분을 알고 채워넣을 수 있으니까요. 보통 화이트보드를 좋아하는데 쓸 수 없어서 종이를 오려가며 끄적끄적했어요. 은근 재미있었는데요. 이때 적은 게 플레이어의 행동, 룰, 캐릭터, 몹, 맵, 그리고 나중에 한두 개 얹을 잔재미 요소들이었어요.

그리고 이때 H-34가 바로 게임 디자인에 있어서 H-19와 함께 가장 중요한 시점이 됩니다. 제가 정리하다가 신나서 그만 오버 디자인해버렸거든요. 기본 메커니즘이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게임을 좀 더 생동감있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몹 AI와 맵에서 멈춤없이 달려버린 거죠. 아무래도 기존에 얘기했던 스펙이 아닌지라 마침 계시던 엔지니어 분에게 이런 아이디어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여쭤봤죠.  지금 와서 보면 거의 ‘몹 AI 툴과 맵 생성 툴 만들면 좋겠어요.’의 덩치라서 많이 당황하셨을 거에요. 한 5분 정도 얘기를 나눈 것 같은데, 이 대화는 엔지니어 분이 “왜 맵 절차적 생성을 꼭 하고 싶으신 건가요?”라고 물으셨을 때, 제가 “안 해봐서요. 제 욕심이에요.”라고 답하면서 끝이 납니다…

맵 생성 vs 몹 AI에서 맵 생성을 한 번 쳐냈고, 몹 구성에서도 AI 부분을 쳐냈습니다. 요소가 여럿 있어서 조합하면 열 종 정도의 패턴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었고, 상황 읽어서 AI들끼리 대화하는 느낌까지 만들어내려고 했거든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것도 다 제가 툼레이더에서 너무 깊은 감명을 받은 탓이죠. (툼레이더: 게임 AI와 잠입 플레이, 게임내 텍스트 스토리텔링: 툼레이더의 사례 참고) 메두사가 상황에 따라 독백하고, 병사 한 명이 메두사 발견하면 지원군 요청해서 쫓아오고 하면 신날 수도 있었겠죠. 다만 그것이 2D 격자 미로 길찾기 게임에 안 맞을 뿐이죠. 이 지적을 해주신 엔지니어 분께는 지금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상한 곳으로 튀지 않았어요. 왠지 아쉬운 마음을 담아 당시에 말 그대로 ‘잘라낸’ 맵 생성과 AI 행동/대화 패턴 디자인도 올려봅니다…

abandoneddesign반갑다. 얘들아. 겉보기엔 그럴싸하지만 너희들을 만드려면 기본 만드는 데에도 며칠은 걸렸을 테고, 그렇게 넣었는데 별 재미가 없었을 지도 모르지… 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맵 생성과 몹 AI 일부를 덜어내면서 전체 게임 디자인의 윤곽이 문서화(?)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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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자체는 마지막날 찍은 사진이네요. 필요하다면 팀 분들도 보실 수 있었겠지만, 사실 이건 ‘이것 안에서만 최선을 다한다’는 제 다짐이자, 제가 어딘가 헷갈려 할 경우 저를 잡아줄 이정표인… 사실 제게 더 필요한 문서죠. 저는 여기까지 해놓고 귀가했습니다.

H-27 프로토타입

오전 11시 정도에 와보니 벌써 프로토 타입이 돌고 있었습니다. 맵이 생성되고, 메두사를 상하좌우로 조작할 수 있고, 우선 작업한 캐릭터와 맵 타일이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어, 뭔가 너무 빠른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아래가 토요일 정오 무렵 해당 버전의 일부분을 캡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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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가 너무 묻혀보이거나 타일이 장애물처럼 안 보인다는 의견들이 있었고 이를 토대로 아트 분들이 수정해서 새로운 애셋들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H-25 ver 0.1 완성, 개발 사이클의 시작

이윽고 오후 2시에 어느 정도 정리된 버전이 나왔고, 이를 ver 0.1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스크린샷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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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부터도 기미가 있었지만, ver 0.1때부터는 토요일 밤까지 자연스레 개발 사이클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최신 버전이 나온다 → 잠시 모여 해본다 → 가장 급하게 필요한 게 뭔지 같이 정한다 → 다음 버전의 목표를 적어 페이스북 그룹에 공지 글로 올린다 → 해당 기능들을 두세 시간동안 만든다 → 최신 버전이 나온다 → …

이게 이론적으로 되는 거긴 한데,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한두 시간 단위로 이게 이뤄지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되더라고요.

ver 0.1을 보고 나서 정한 ver 0.2의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메두사의 HP UI를 화면에 뿌리기: 우선 하트 + 빨간 막대 게이지로.
2. 메두사의 HP 변화 관련 이펙트: 메두사에 말풍선 붙여서 하트 또는 깨진 하트 표시.
3. 메두사/병사의 시야 표시하기: 빛 광원 느낌
4. 최신 아트 애셋 적용
5. 최신 사운드 애셋 적용

이때부터 저는 ‘어, 나 이상하게 한가한데?’라는 신묘한 기분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버전 나오면 보고, 같이 다음 버전 얘기하고, 그럼 다음 버전 목표 정리해서 올리면 딱히 더 할 일이 없는 이런 미묘한 상황.. 엔지니어 분들은 다음 버전 구현하고 있고, 아트 분들은 다음 버전에 필요한 애셋 만들어서 바로 넘기고 있고, 사운드는 사운드 디자이너 분이 엔지니어 분과 맨투맨으로 하고 계셨고요. 뭔가 잉여해진 이 낯선 느낌… 그래서 전 다음 버전 말고 다음 다음 버전 정도에 필요한 것들을 미리 생각하고 간단한 플로우를 잡고 아트 쪽에 컨셉을 전달하는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사이클로 일을 했습니다. 오프닝 씬, 엔딩 씬에 들어갈 대사를 준비하거나 GGJ 홈페이지 제출 설명을 미리 써넣기 시작하고, 게임 이름도 Medusa, the unloved one으로 우선 정했습니다. 왠지 쓸모가 있을 것 같아 행사 스탭께 부탁드려서 팀 사진도 찍었고요.

H-24 ver 0.2

스크린샷을 따로 찍어놓은 게 없네요. 메두사 HP UI가 붙고, 메두사와 병사가 빔 형태의 시야를 붙이고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메두사와 병사 애셋에는 그림자 등이 좀 더 추가되었고요. 기억을 되살려보면 내부 로직은 어느 정도 돌고 있는데 유저 피드백이 부족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정리한 ver 0.3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요 목표: 메두사와 병사의 움직임/이동/상황 피드백 등에 집중
1. 조작법 투토리얼: 게임 실행시 메두사 주변에 키캡 이미지 띄웠다가 입력 들어오면 페이드 아웃.
2. 메두사의 상태 표시: HP 오르는 동안 말풍선에 하트 띄우기, HP 떨어질 때(=병사가 돌이 될 때) 말풍선에 깨진 하트 띄우기
3. 병사의 상태 표시: 방향 전환하기 직전(?)에 말풍선에 방향 전환 화살표 띄우기. 메두사 인지했을 때 말풍선에 느낌표 띄우고 추격모드로 전환하기.
4. 병사의 AI 구현: 메두사가 병사를 오래 보고 있으면(=메두사의 hp가 n이상 회복되면), 느낌표를 띄운 다음 메두사 방향으로 전환.
5. 병사의 이동 속도 이분화: 평소 병사의 이동 속도(메두사 이동의 0.6 정도?), 병사의 추격 속도(메두사 이동의 1.2 정도?)를 서로 구분함.
6. 병사가 돌로 됐을 때 이미지 애셋 적용

ver 0.3까지 하면 내부 플레이는 거의 다 되는 느낌이 들었죠.

H-22 ver 0.3

1545654_447966001997069_1564373680_n캐릭터들의 상태 말풍선이 붙었습니다. 돌로 변한 이미지도 들어갔고요.

이 버전을 확인한 뒤 정리한 ver 0.4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요 목표: 메두사/병사 v0.3 미구현 버전 마저 구현 & 컷씬 (오프닝&엔딩) 구현
1. 조작법 투토리얼: 게임 실행시 메두사 주변에 키캡 이미지 띄웠다가 입력 들어오면 페이드 아웃.
2. 병사의 상태 표시: 방향 전환하기 직전(?)에 말풍선에 방향 전환 화살표 띄우기. 메두사 인지했을 때 말풍선에 느낌표 띄우고 추격모드로 전환하기.
3. 병사의 AI 구현: 메두사가 병사를 오래 보고 있으면(=메두사의 hp가 n이상 회복되면), 느낌표를 띄운 다음 메두사 방향으로 전환.
4. 병사의 이동 속도 이분화: 평소 병사의 이동 속도(메두사 이동의 0.6 정도?), 병사의 추격 속도(메두사 이동의 1.2 정도?)를 서로 구분함.
5. 컷씬 구현: 오프닝 씬, 엔딩 씬 이미지 + 텍스트 + 사운드 적용

컷씬 이미지들이 굉장히 감각적이면서도 빨리 나왔습니다. 타이틀 페이지 등을 만들며 보니 기존의 Medusa, the unloved one이라는 제목이 비록 주제에는 맞을 지 모르겠지만, 게임 로직에 주는 의미도 없고 너무 밋밋해서 Peeping Tom에서 따와서 Peeping Medusa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GGJ 홈페이지에서는 게임을 알파벳 순으로 정렬하더라고요. 그걸 미리 알았더라면 좀 다른 제목을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어요.)

ver 0.3과 ver 0.4 사이는 시간 간격도 짧고 덩치큰 게 많이 들어가면서 애초 목표한 것들이 다음 버전으로 밀리는 것들이 한두 개씩 나오긴 했습니다만 일단 전반적인 속도에는 문제가 없었죠. 이대로면 당일 저녁에는 애초 만들기로 한 건 웬만큼 다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으로 ‘일단 메인 플레이를 먼저 만들고 검증하자. 뭘 추가할 지는 기본 나온 거 보고 결정하자.’라고 서로 얘기했었는데 그 결정을 할 때가 됐다는 생각도 다들 했던 것 같아요.

H-19 저녁 & 도전과제 추가 결정

금요일에는 행사 일정 때문에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없었고, 토요일 점심은 오전에 나온 시간이 전부 달라 편하게 각자 먹었습니다. 그래서 토요일 저녁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팀이 같이 밥을 먹은 때네요. 저녁을 먹으면서 현재 게임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습니다. 스팀에 내보자거나 트위터로 뿌리자는 농담들이 오가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얘기는 역시 이거였죠.

‘무엇을 추가로 넣을까.’

현재 기본은 갖춰졌으니, 기본을 다듬는 시간을 포함하더라도 뭔가 기능 하나는 아슬아슬하게 넣을 수 있겠더라고요.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은 ‘지금 우리가 만든 게임, 사람들이 1-3회는 재미있게 플레이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을 5-20회 정도 더 플레이할 수 있게 하는 건 무엇일까?’였고,  처음 팀 만들고 얘기했던 것들, 추가 맵, 추가 몹 등은 현재 시점에 넣어봤자 공은 공대로 들고 별 재미는 없을 듯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도전과제’였습니다. 기본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병사를 돌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병사에게 죽을 것인지를 체력 상태에 따라 선택하게 만드는데, 도전과제를 통해 플레이어에게 특정한 플레이를 유도할 수 있을 듯했습니다.

H-18 ver 0.4

저녁을 먹고 몇 가지를 조절한 버전을 0.4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스크린샷이 없네요. 이 버전을 확인하고 정리한 ver 0.5의 목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ver 0.5 주요 목표: 컷씬 구현, 시야 빔 다듬기, AI 다듬기, 추가 기능 기획

1. 컷씬 구현: 오프닝 씬, 엔딩 씬 이미지 + 텍스트 + 사운드 적용
2. 시야 빔 다듬기: 기존의 직사각형 빔 이미지 대신 좀 더 가늘어지는 이미지로 교체 후 다시 검토
3. AI 다듬기: 벽보고 서있지 않기.
4.병사가 돌이 될 때마다 신규 병사 리젠
5. 시야 빔이 돌이 된 병사를 투과하지 않게 판정 수정.
6. 엔딩 화면에 게임 통계 표시: 생존한 시간, 석화시킨 병사의 수. (해당 통계의 저장 기능을 만들어 이후 도전과제의 밑구조 준비하기?)
7. 해피엔딩 이미지
8. 크레딧 페이지 디자인
9. 도전과제 페이지 디자인
10.  메인 페이지 디자인: 크레딧 페이지와 도전과제 페이지 누르거나 명령어 알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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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제를 어떻게 디자인할까 고민하는 와중에 고개를 들어보니 남은 시간 17시간 51분. 토요일 밤 9시 8분. 이 시점에 신규 기능을 추가해서 넣으려면 일요일 오후 3시까지 완료하기에는 상당히 빠듯해보였습니다. 어떻게든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굉장히 빡빡할 듯한 이 느낌.

H-17 ver 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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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0.45 버전이라는 게 있지는 않았지만 스크린 샷이 있어서 짚고 넘어갑니다. 레이저 빔과 같던 시야 표시가 좀 달라졌고, AI들이 꽤나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전 버전 리뷰 때만 돌아가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밸런스나 AI 로직 바뀐 건 엔지니어 분들이 확인하시면서 조정하셨는데요. 이맘때부터 “아오, 또 죽었어!”하는 비명이 들려왔던 것 같아요.

H-16 ver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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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밤 11시. 오프닝 씬, 타이틀 페이지, 크레딧 페이지, 엔딩씬 모두 추가했습니다. 물론 다듬어야할 여지는 있었겠지만요. 크레딧 페이지는 이렇게 저렇게 구성해보다가 낮에 찍은 팀원 사진을 살짝 리터칭해서 써보니 느낌이 좋아서 그대로 가기로 했어요. 리터칭할 때는 몰랐는데, 이것도 지금 보니 툼레이더 크레딧(링크)에 영향을 많이 받았었군요… 다음 버전 목표, 마지막 날인 일요일 오전부터 마감인 오후 세 시까지 할 일들을 잡았습니다.

ver 0.6 주요 목표: HP 떨어졌을 때 연출 추가, 도전 과제 붙이고 검증. 그외 다듬기

1. HP가 매우 떨어져 있을 때의 연출 추가
2. 도전과제 로직 & 페이지 & 연출 & 아이콘 & QA 등등
3. 시야 빔이 돌이 된 병사를 투과하지 않게 판정 수정.
4. 엔딩 화면에 게임 통계 표시: 생존한 시간, 석화시킨 병사의 수. (이 기능 또는 트위터 연동은 최후까지 보류.  도전과제 완성도를 올리는 게 우선순위 높음.)
5. 오프닝 씬에 ▶ 모양의 텍스트를 우하단에서 깜빡거리게 오버레이: 다음 화면이 있다라는 단서 정도를 줄 수 있게.
6. 현재 윈도창 제목이 한글로 ‘메두사’로 되어 있는데 ‘Peeping Medusa’로 수정

이때쯤에는 트위터 연동을 기능 후보 목록으로 올린 것도 보실 수 있는데요. 글로벌 게임에서 쏟아져 나오는 게임들이 어마어마할 텐데, 그중에서 우리 게임이 좀 더 발견되었으면 했거든요. 물론 트위터를 붙인다고 효과가 확 올라가진 않겠지만, 바이럴 무기가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건 차이가 있으니까요. 글로벌 게임 잼 주최 측에서는 #GGJ14라는 해쉬태그를 밀고 있는데, 여기에 같이 얹어서 가면 적어도 글로벌 게임 잼하는 사람들은 우리 게임을 좀 더 봐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인 거죠. 물론 당시에는 도전과제가 훨씬 중요했으니까 최후의 최후까지 우선순위를 낮춰두기로 했습니다.

H-14 도전과제 디자인 완료

예전에 여러 번 고민하긴 했지만, 이걸 과연 시간 안에 디자인하고 아트와 엔지니어링에 넘길 수 있을까… 솔직히 좀 회의적이었는데, 10개라는 제한 덕분인지 대략의 뼈대와 텍스트와 아이콘 컨셉까지 어찌어찌 끝냈습니다.

achievement

그래서 저도 귀가했는데, 이 디자인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련 효과음 파일이 그룹에 올라왔다는 사실은 왠지 적어둬야만 할 듯합니다.

귀가 얘기가 나온 김에 적어 보면, 행사 종료 후 각자 만든 게임 발표할 때 ‘다들 얼마나 잤나.’라는 질문을 받았는데요. 잘만큼 잤습니다. 평소보다 조금 적게 자긴 했지만 철야까지는 아닌 야근한 직장인 정도의 느낌으로 잤어요. 베테랑 분들이 많기도 했고 당장 저부터 그렇게 할 체력이 없어서, 전부 다 잠은 집에서 자고 아침에 나오는 마치 직장같은(?) 게임 잼이었습니다. 아, 한 분 예외가 있었는데요. 댁이 지방이라 어쩔 수 없이 행사장에서 주무셔야 했어요. 덕분에 하루가 지날 때마다 체력 깎이신 게 눈에 막 보이고…

H-5 마지막 전력 질주

일요일 아침 10시 정도부터 마지막 전력 질주를 시작했습니다. 전날에는 한두 시간마다 잠시 쉬면서 버전을 올렸었는데, 마지막 날에는 결국 질주할 수 밖에 없더라고요. 특히 마감이 다가올수록 ‘아, 여기 이거 조금만 더 손대면 훨씬 괜찮아질 텐데.’하는 부분들이 다들 한두 개씩 있어서 욕심을 내게 되었습니다.

전날까지는 버전별 목표를 적어뒀던 글이 있어서 그걸 옮겨왔는데, 마지막 다섯 시간 분은 결국 기억에 의존해서 써야겠네요. 다음과 같은 작업들을 했습니다.

1. 도전과제 아이콘 작업
2. 도전과제 로직 구현 & 검증
3. 도전과제 페이지 구성
4. 도전과제 달성시 노티피케이션 구현
5. HP저하 상태의 긴박감 연출
6. 크레딧의 텍스트 다듬기
7. 결과 화면에 해당 판의 플레이 정보(생존 시간, 돌로 만든 병사 수)
8. 결과 화면 플레이 정보를 트위터로 전송
9. 프로그램 아이콘 제작
10. 메두사/병사 시야 이미지 개선
11. 돌이 된 병사 이미지 개선
12. 발표 준비: 개발 기록 공유

뭘 어떻게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전력 질주였습니다.

H-0 제출 완료

ggjpage

네. 제출했습니다. 막판에 ‘아, 딱 한 시간만 더 있으면 이거 더 깔끔하게 할 수 있는데..’ 싶은 것들이 있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는 게 게임 잼의 미덕일 테니까요.

제출 후에는 다른 팀들과 함께 게임 발표를 하고 팀 분들과 좋은 얘기 많이 나누고 귀가했습니다.

뒷 이야기

돌이켜보면 참 굉장한 시간이었어요. 서로 아무 것도 모르는 이들끼리 만나 이틀 만에 게임을 하나 완성해내는 것도 참 대단한 일인데, 그 과정에 낭비가 거의 없었다는 게 놀라웠어요. 팀 분들이 모두 대단하기도 했지만, 아마 같은 구성원으로 다시 만나도 이런 일이 다시 생기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일단 기록 삼아 쭉 적어뒀지만, 좀 더 정제해서 글로 남겨두고 싶은 시간이었네요.

제 개인으로도 얻은 게 참 많았어요. 사실 지난 몇 년 바쁘게 게임 만들면서 너무 지쳐서 자신감도 의욕도 많이 잃은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쉬면서 재충전하려는데도 그것도 좀 지지부진했었는데요. 생각도 못한 곳에서 신나게 에너지를 충전했네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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