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4일-26일, 글로벌 게임 잼@ 판교, 넥슨 코리아에 참석해 Peeping Medusa (링크)라는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완성물도 좋았지만 과정이 참 맘에 들어서 ’44시간의 개발 기록'(링크)도 남겼는데요. 해당 글은 다소 길고 산만해서, 좀 더 포스트모템 형식에 맞춰 글을 정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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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게임 이름: Peeping Medusa
* 개발팀: 6명 (게임 디자인 1, 아트 2, 엔지니어 2, 사운드 디자인 1)
* 개발 기간: 2014년 1월 24일 저녁 7시-1월 26일 오후 3시
* 출시일: 2014년 1월 26일
* 출시 플랫폼: MS 윈도
* 다운로드/게임 정보 페이지: Peeping Medusa (링크)

아래는 게임 플레이 동영상입니다.

게임 제작 과정 개괄

올해 글로벌 게임 잼의 주제는 아나이스 린이 남긴 “We don’t see things as they are, but we see them as we are.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식으로 본다.)”였습니다. 저는 이 주제에서 ‘편견’, ‘눈에서 빔이 나가면 적이 내 모습으로 바뀜’, ‘메두사’ 등의 키워드를 뽑아냈고, 이를 토대로 ‘슬픈 메두사가 주인공인 게임’을 만들겠다고 컨셉을 발표해서 동의하는 분들과 팀을 꾸렸습니다.

‘메두사의 외모가 바뀌어 사람들이 대한 태도가 달라졌을 뿐, 메두사는 원래의 마음을 간직하고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라는 설정 위에 잠입 게임을 살짝 비틀어 ‘적을 피해야 하는데, 한편으로는 뒤에서 지켜봐야만 한다.’라는 기본 룰을 만들었고요. 팀 분들과 함께 ‘2D 격자형 미로 속에서 적을 피해 적을 몰래 봐야 하는 게임’ 으로 구체화했습니다.

이런 룰을 토대로 토요일 오전에 프로토타입이 나왔고, 토요일 오후 동안 이를 반복 개선했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기능 하나를 더 추가할 수 있을 듯해서 논의를 통해 ‘도전과제’를 넣기로 했고, 일요일 오전-오후에 걸쳐 도전과제 넣고 연출 개선한 다음, 일요일 오후 3시에 제출했습니다. 자세한 과정은 조금 산만하지만, ’44시간의 개발 기록'(링크)을 참고해주세요.

이 글에서는 잘한 점 세 가지, 아쉬운 점 세 가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잘한 점

1. 훌륭한 팀 구성, 팀원, 팀 문화

사전에 의견 조율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컨셉에 맞춰 즉흥적으로 모였을 뿐인데 훌륭한 팀이 만들어졌습니다. 우선 여섯 명이라는 숫자가 좋았는데요. 너무 적어서 하고 싶은 걸 못할 일도 없었고, 그렇다고 너무 커져서 소통하는 데 비용이 들거나 손이 비는 사람이 생길 일도 없는, 딱 최적의 숫자였다고 생각해요.

게임 디자이너 1, 아티스트 2, 엔지니어 2, 사운드 디자이너 1이라는 직군 비율도 참 좋았어요. 엔지니어가 둘이어서 한 분이 프로토 타입 만들면서 진도 빼놓고 다른 분이 이런 저런 것 붙이고 수정하시고, 마지막 날에는 한 분이 세부적인 연출 올리고, 다른 한 분은 도전과제 붙이는 등 역할 분담을 잘 하시더라고요. 아티스트가 두 분이어서 전체적인 아트 애셋의 볼륨에도 부담이 덜했고요. 사운드 디자이너 분이 계신 것도 정말 행운이었는데, 덕분에 연출이나 이펙트 쪽의 디테일을 굉장히 살릴 수 있었어요.

직군 뿐만 아니라 역량도 정말 인상적이었는데요. 아티스트 두 분은 학생이셨지만 손도 빠르고 감각도 있으시고 협업 경험이 많으시더라고요. 그리고 나머지 네 명은… 그중 제가 가장 프로젝트 경험이 적은 것 같았다는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전반적으로 다들 게임 프로젝트에 대한 경험과 센스가 워낙 많으셔서 ‘척하면 착’인 상황이 자주 나왔고, 시간 안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칼같이 계산하시더라고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초반에 아이디어 공유할 때를 제외하곤, 게임잼이라기보다는 좋은 의미로 회사에서 일하는 것 같았습니다. 시작하면서 팀내 소통 도구로는 페이스북 비공개 그룹을 하나 만들어 파일과 다음 버전 이슈 등을 공유했는데요. 버전 나오면 짧게 회의해서 버전 리뷰하고 다음 버전 목표 잡은 다음, 다시 자기 자리에서 자기 할 일 하는 그런 모습이었어요. 다른 팀들에 비하면 상당히 건조하게 일했다고 볼 수도 있을 텐데요. 전체 할 일과 일정이 잘 분배된 덕분에, 게임잼인데도 대부분 막차 시간에 맞춰 퇴근(?)하고 오전 되면 출근(?)해서 작업하면서 체력이나 효율도 챙길 수 있었네요.

2. 완성물에 대한 비전 공유

이건 사실 게임 잼 뿐만 아니라 좀 더 시간 여유가 있는 프로젝트에서도 쉽지 않을 일인데요. ‘완성물이 어떤 모습일 것이다’를 팀 전원이 굉장히 빨리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주제 발표가 금요일 저녁 7시 반이었고, 전체 피치 이후 팀이 구성된 게 아마 밤 9시 반 정도였는데요. 제가 두 시간 정도 고민하고 구체화하긴 했지만 팀 만들고 얘기를 시작한 9시 반에는, 사실 아주 기본적인 룰 외에는 허술한 부분도 많았고 뭔가 군더더기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런데 팀을 만들고 나서 서로 궁금한 점과 넣고 싶은 것을 한 시간 정도 얘기를 하면서, 게임 디자인이 굉장히 빠르게 구체화됐어요. 남은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기술적인 요소까지 고려하고 나니 “격자형 미로 속에서 적에게 맞거나 정면으로 보지 않고, 뒤에서 바라봐야 하는 게임”이라는 뼈대가 잡혔어요. 그게 금요일 밤 11시였으니까 주제 발표 후 네 시간이 안 걸린 셈이에요.

이어서 토요일 새벽까지 프로토타입 작업과 게임 디자인 구체화를 같이 진행했었는데요. 이때 추가로 논의하고 문서화하면서 사실 게임 디자인이 결정됐고, 이 디자인의 뼈대는 완성물 제출 때까지 바뀌지 않았어요. 바로 뒤에서 얘기할 ‘빠른 프로토타입’ 덕분이기도 한데, 토요일 오전에 돌아가는 프로토타입을 보면서 팀 모두가 좀 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거든요. 덕분에 이후 여력이 생겨 추가 기능을 논의할 때도 ‘이 완성물에 그 기능을 붙이면 과연 재미있을까?’를 기준으로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의사 소통이나 작업에 있어서 낭비한 시간이 거의 없어서 짧은 시간에 원하던 완성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네요.

3. 빠른 프로토타입과 짧은 간격으로 반복해서 다듬기

PeepingMedusa_Iteration

긴 말할 것 없이 이 그림 한 장이면 될 듯합니다. 금요일 밤에 기본 뼈대를 공유한 다음, 토요일 오전 중에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재미있는지 보고 그 다음 필요한 것들을 붙이기로 했는데요. 프로토타입이 굉장히 빨리 나왔습니다. 여기에 아트 애셋들을 조금 붙여서 ver 0.1을 만든 게 토요일 오후 2시였어요.

이 0.1 버전이 나온 뒤로는 모두 완성물에 대한 그림을 좀 더 명확하게 그릴 수 있었습니다. 0.1 이후 토요일 오후는 거의 두 시간마다 버전을 0.1씩 올리는 짧은 개발 사이클을 운영했습니다. 새 버전 나오면 각자 잠시 플레이하고 살펴본 뒤 ‘그럼 다음 버전까진 이걸 고치고 이걸 붙이는 것까지 하죠.’라는 식으로 다음 버전의 목표를 잡을 수 있었죠. 그럼, 각자 다음 버전에 필요한 일을 하고 최신 버전 나오면 확인하고 또 고치고 또 붙이고 하는 식으로 계속 다듬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토요일 저녁 쯤에는 연출과 컷씬 등을 빼면 거의 완성물에 가까운 모습이었고, 이에 맞는 신규 기능을 고민해서 추가할 수 있었습니다.

아쉬운 점

1. 테스트 환경 부족

짧은 시간에 완성도를 위해 많이 노력했고,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은 완성물을 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끝내놓고 보니 아쉬운 부들도 있었는데요. 게임 플레이 자체는 다들 눈여겨 보고 여러 번 수정해서 꽤 안정적이지만, 게임 플레이 바깥에서는 메뉴 이동할 때 음악이 안 들린다거나, 텍스트에 오타가 있었다거나 하는 자잘한 오류들이 있더라고요. 고치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닌 말 그대로 자잘한 부분이라서 미리 발견했더라면 아마 충분히 고칠 수 있었을 거에요. 테스트 환경이 부족했던 게 그 원인일 텐데요. 가장 빠르게 만들 수 있어서 윈도에서 돌아가는 게임을 만들었지만, 팀의 절반은 맥을 쓰고 있었거든요. 물론 두세 시간마다 새로운 버전을 테스트해볼 수 있었으니 테스트 기회가 부족했던 건 아니지만, 집에 있던 PC 하나 더 들고 가서 테스트 PC로 쓰면서 버전 리뷰 때 외에도 좀 더 자주 보면서 자잘한 것 잡았으면 더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2. 게임 플레이 바깥의 덜 다듬은 부분들

제한 시간 내에 완성도 높은 게임을 만들려다 보니 아무래도 게임 플레이 구현에 집중하게 됐고, 토요일 저녁 도전과제를 넣기로 결정한 후로는 도전과제가 최우선 순위가 되면서, 일요일 다섯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엔 게임 플레이 연출 개선과 도전과제에만 집중했어요. 그래서 그 바깥의 부분들, 즉 오프닝씬, 메인 메뉴, 엔딩 씬 등에는 상대적으로 들일 시간이 적었고, 검증하거나 반복해서 개선하지도 못했어요. 물론 48시간, 실제로는 44시간의 시간 제한 속에서 밤을 꼴딱 샌 것도 아니고 출퇴근하면서 거기까지 다 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니까요. 사실 토요일의 그 환상적인 개발 사이클에 비하면, 일요일은 다들 막판에 시간은 없고 욕심은 나고 우선순위도 왔다갔다 하면서 정신없이 달렸던 것 같긴 해요. 한 분의 말씀처럼 어차피 게임잼인데 좀 더 짜내봤으면 어디까지 갔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고요. 많이는 아니고 일요일에 딱 두 시간 정도만 여유가 있어서 한 번만 사이클을 더 돌았다면, 메인 메뉴나 엔딩 쪽도 깔끔하게 할 수 있었을 것 같더라고요.

3. 불가피하게 쉬지 못한 한 사람

앞서 얘기한 것처럼 저희 팀은 이번 게임 잼을 출퇴근 형태로 치렀어요. 남은 시간을 보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고, 밀도 높게 일하는 대신 하기로 한 데까지 하고 나면 집에 가서 자고 오는 식으로 했죠. 하지만, 아티스트 한 분은 집이 너무 멀어서 어쩔 수 없이 이틀 연속 행사장에서 주무시게 됐어요. 그 결과, 하루 하루 지날 때마다 눈에 보일 정도로 체력이 떨어지시는 게 보이더라고요. 이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가장 아쉬운 부분이긴 해요.

정리

개발 중에도 그랬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도 참 신나면서도 신기한 시간이었습니다. 위에 정리한 좋았던 점 세 가지를 봐도 그렇습니다. 훌륭한 팀이, 완성물에 대한 비전을 빨리 공유하고, 프로토타입 빨리 만들어서 반복 수정했다. 이건 그냥 게임 개발에서 ‘교과서를 중심으로 수업에 충실하며 예습/복습을 열심히 했다.’정도로 뻔한 얘기입니다. 그리 짧지 않은 경력에서 그렇게나 해보고 싶었지만 제대로 못해봤는데, 뜬금없이 게임 잼 행사에서 하게 됐네요.

개발 기록에 이어 포스트모템 글까지 빠르게 써제낀 것도 그때문이에요. 빨리 기억을 덜어내고 생각해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이제 지난 주말의 흥분은 가라앉았으니, 왜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기 어려웠나, 왜 그동안 회사에서는 이렇게 일하지 못했나, 이런 건 게임 잼에서만 있을 수 있나,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려면 뭐가 필요한가, 가끔이라도 회사에서 이런 일을 경험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것들을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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