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처음은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합니다. 아이폰 3GS, 4S, 아이패드, 아이패드 미니를 써오던 저는, 작년 10월 넥서스 5를 구입하면서 처음으로 안드로이드 기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iOS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과연 넥서스 5에 익숙해질 것인지 의문이었지만, 여러 면에서 꽤 좋아서 만족하면서 쓰게 됩니다. 특히 아이폰에 비해 커다란 5인치 화면은 넥서스 5의 꽤 큰 장점이었고 (화면 크기가 커지지 않는 한) 아이폰으로 다시 돌아가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모바일 기기의 화면 크기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제품들 사이에서 차별성을 주기 위해 다양한 화면 크기의 제품들이 나왔고, 소위 패블릿을 비롯한 대형 화면의 전화기들이 나오면서 ‘한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최적의 크기’에 대한 얘기도 많았죠. 10인치, 7인치, 패블릿이 있고, 휴대폰은 계속 커지는 중이라는 얘기들을 많이 들었지만 ‘얼마나 다양했고, 얼마나 커지고 있는걸까.’하는 궁금증이 들어, 연도별로 나온 모바일 기기의 화면 크기를 그래프에 찍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고생길이 열렸습니다. 가장 큰 고민은 ‘어떤 자료를 쓸까?’였습니다. 시장에 있는 모든 제품의 자료를 전부 모으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니까요. 처음에는 위키피디아의 픽셀 덴시티 목록 문서에 있는 기기들을 쓰려고 했지만 어느 정도 정리해놓고 보니 위키피디아 특성상 제품 선정이 다소 들쑥날쑥하더라고요. 다음으로는 2001년도 이후 미국에 출시한 휴대폰 대부분이 있는 phonescoop의 자료를 고려해봤지만, 자료를 취합하는 것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최대 화면이 6.4인치라는 게 아쉬웠습니다. 태블릿이나 리더들을 넣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결론은 Verge에서 리뷰한 제품들을 자료로 쓰기로 했습니다. 물론 Verge의 모바일 / 태블릿 리뷰 목록은, 2011년 2분기부터나 자료가 있고, 스펙 시트가 제대로 있는 것도 아니고, 리뷰 선정 기준은 편집진의 주관이며(이를 테면 시장에서 별 반응을 얻지 못한 노키아의 윈도폰이 꽤 꾸준히 여러 번 다뤄집니다.), 방대한 ‘모집단’의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Verge의 리뷰 목록이 ‘표본’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휴대폰, 태블릿, 리더 모두를 리뷰한다.
2. 기사 작성 시점의 최신 기기를 선정한다.
3. 사람들에게 관심있을, 즉 시장에서 주목받을 만한 기기를 선정한다.
4. 다양한 플랫폼과 제조사를 다룬다.
5. 표본 크기가 짧은 시간에 수작업으로 다룰 수 있는 크기다.

이후 Verge의 리뷰 문서들을 훑으며 자료로 만들었습니다. 액정에 있어서 PPI도 중요한 것을 알고 있지만, 제가 궁금한 것은 절대적인 크기, 폼팩터였기 때문에 액정의 크기만을 취합했습니다. 해당 자료는 구글 문서 DeviceScreenSizeTrack에서 보실 수 있고, 이를 분산형 그래프로 찍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X축은 출시년도와 월을 분기별로 놓은 것이고, Y축은 액정 크기를 인치로 나타낸 것입니다.

20140302MobileDeviceScreenSizes.001

이렇게 수없이 찍힌 점들을 한참 쳐다보면서 그룹들로 묶어볼 때가 가장 재미있는데요. 제가 묶어본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20140302MobileDeviceScreenSizes.002

1. 9.7인치-10.1인치: 아이패드 출시 후 본격적으로 생겨난 세그먼트입니다. 8.9인치나 9.3인치 등으로 조금씩 벗어나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 9.7인치의 아이패드 부근에 밀집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011년, 2012년에는 Verge에서 굉장히 자주 리뷰했었는데, 2013년 들어와서는 굉장히 뜸해진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결국 9.7인치 쪽은 아이패드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은 듯해요.

2. 7.9인치: 그 이전에도 몇 종 있었습니다만, 2012년 4분기 아이패드 미니가 출시하면서 확고해진 세그먼트입니다.

3. 7인치: 7.0으로 거의 고정된 이 세그먼트에는 아마존 킨들 파이어, 넥서스 7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4. 5.3인치-6인치: 소위 ‘패블릿’ 세그먼트입니다. 시작을 연 건 2011년 말-2012년 초에 출시한 삼성 갤럭시 노트일 테고요. Verge에서는 그 이후 드문드문 다루다가 2013년 4분기에는 좀 더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5. 3.5인치-5인치: 일단은 기존의 ‘휴대폰’ 세그먼트입니다. 특정 분기에서 최소값과 최대값을 보는 게 좀 재미있는데요. 먼저 최소값부터 보면 2011년만 하더라도 3.5인치보다 작은 기기들이 꽤 있었지만, 2012년에는 하한선이 대략 4인치 대에서 정해졌고, 2013년에는 4.5인치-5인치를 오가는 모습입니다. 최대값의 경우는 명확히 선을 긋기 어렵지만, 2011년 4분기에 5인치에 근접하는 휴대폰들이 나오다가 2012년에는 그래도 5인치를 상한선으로 했으나 2013년에는 5인치를 넘어서면서 패블릿과의 영역이 모호해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엄밀히 따져보면 휴대폰이 커지면서 패블릿도 좀 더 커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요. (Verge에서 리뷰할 정도로 시장에서 주목하는) 휴대폰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액정이 커지고 있는 경향을 뚜렷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그래프에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들을 옮겨보면, 아래의 그래프와 같습니다.

20140302MobileDeviceScreenSizes.003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는 결국 제 주관으로 판단했는데요. 우선 OS와 기기, 컨텐츠를 하나로 갖고 있는 플랫폼 홀더인 아마존, 애플, 구글을 넣었습니다. (구글의 경우 넥서스 브랜드로 나온 기기들은 제조사가 아닌 구글의 기기로 간주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노키아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지만, 일단 현시점에서 ‘주요 플레이어’로 부르기엔 좀 부족한 듯해서 뺐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아직은 플랫폼 없는 제조사이지만, 안드로이드 기기에서 엄청난 영향을 갖고 있는 삼성을 넣었습니다.

이 마지막 그래프를 보면서 했던 생각은 아래와 같습니다.

1. 9.7인치 타블렛 시장은 애플 아이패드의 독점으로 굳어져보인다.
2. 7-8인치 사이는 킨들 파이어가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이패드 미니 이후로는 아직 알 수 없다.
3. 휴대폰은 확실히 커지고 있으며 이제 다들 4인치는 작다고 생각한다.
4. 패블릿의 성공이 휴대폰 대형화를 이끈 이유 중 하나겠지만, 그런 패블릿은 큼직해진 휴대폰과 차별화되기 위해 더 커지고 있다.
5. 모든 세그먼트에 진출하고 결국 트렌드를 만들어낸 삼성의 제조력 대단하다.
6. 아이폰 액정 크기 확대에 굉장히 보수적이었던 애플이라도 다음엔 키울 수 밖에 없겠다.

‘휴대폰 정말 커지고 있나?’라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궁금증은 이걸로 풀었습니다.

이 다음 질문은 ‘그럼 어디까지 커질까?’인데, 이건 사실 잘 모르겠네요. 4인치가 한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최적 크기라는 주장에는 동의합니다. 손이 큰 저도 넥서스 5를 한 손으로 조작하려면 상당히 버거우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작은 화면으로 돌아가기에는 큰 화면의 매력이 너무 크더라고요. 물론 휴대성의 문제가 생기니 어느 정도에서 타협점이 생기겠지만요. ‘접는 디스플레이’처럼 휴대성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4.5인치에서 5.5인치사이에서 머물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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