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매스 이펙트 얘기를 하다 보니 예전 생각이 나서 2009년 4월에 다른 곳에 썼던 글을 옮겨옵니다. 말투만 조금 수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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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 이펙트. 이 게임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시간적 공간적 배경에 따라 구분한다면 스페이스 판타지일 테고, 플레이어는 특정 인물이 되어 문제(퀘스트)를 해결하고, 적을 해치우며 경험치와 아이템을 얻으면서 성장하니 전형적인 롤플레잉 게임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게임 중에는 ‘아, 이것이야말로 인터랙티브 무비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 끝내주는 대화 시스템
‘이야 그래픽 끝내주네.’하다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이 게임의 가장 핵심인 대화 시스템입니다. ‘대화물’이라는 표현도 꽤 잘 어울릴 듯한데요. 기본적으로는 상대의 반응에 따라 3-5가지 정도의 선택지를 고르는 단순하고도 직관적인 방법입니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느냐, 또는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말이나 표정이 묘하게 달라지고, 이야기가 갈라지는 것들을 겪다 보면 그 몇 안 되는 선택지에서 한참을 고민하게 됩니다.

상대방을 자신의 말에 따르게 하는 것도 부드러우면서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쪽(paragon)이 있는가 하면, 강압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쪽(renegade)이 있고, 이 선택들에 따라 자기 캐릭터의 성향도 결정되기 때문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법 제도권 바깥의 권력자인 스펙터가 된 후로는 기자나 옛 동료 등 이런저런 뒷거래를 제안하는 인물들이 자주 달라붙는데, 그때마다 ‘이 사람은 나의 동료인가, 적인가. 이 사람은 진실로 내 도움이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저 이용해 먹으려는 것인가. 이 사람의 말을 들어주면 이후 내 경력은 어떻게 될 것인가?’ 등을 판단하는 것이 골치 아프면서도 재미있는 부분이에요.

기계적으로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만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각 인물의 반응이 달라서, 주인공 제외 2명으로 정해진 상륙대에 어떤 동료를 데려갈 것인가 하는 것도 늘 고민되는 일이었습니다. 조연급 인물과의 관계에서 이런 대화 시스템이 더 빛을 발하는데, 부드러운 말 한마디, 또는 사적인 얘기로 로맨스를 키워갈 때는 ‘이건 연애 시뮬레이션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요.

* 웰메이드 블록버스터 스페이스 판타지
비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참 잘 만들었어요. ‘와, 이런 얘기를 생각해내다니.’ 싶을 정도로 독창적인 부분은 사실 그리 많지 않아요. 고도로 발달했었지만, 현재는 멸망한 고대 문명, 항성계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워프 시스템, 지적 생명체의 마인드 컨트롤, 유기체와 기계 간의 대결, 음모론에 빠진 주인공과 관료주의에 절어 복지부동인 당국, 의회와 의회의 심복이라 할 초법적인 감찰관 등은 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얘기들입니다. 한 발 더 나가 배경 설정이나 시각 디자인적으로도 에일리언, 프레데터, 스타워즈가 슬쩍슬쩍 보일 정도로, 어찌 보면 SF에서 나오는 온갖 단골 메뉴들을 모조리 부어 넣은 느낌마저 들죠.

그럼에도 ‘잘 만들었네.’소리가 나오도록 잘 비벼놓은 것이 이 게임의 미덕입니다. 메인 스토리로 시즌을 꾸리고 있지만, 각 조연급 인물들의 사연들로 에피소드 하나씩은 너끈하게 만들 수 있는 느낌이랄까요. 이것저것 어디서 본 듯한 얘기들이지만, 문자 그대로 영화를 보는 듯한 연출과 함께 즐기고 있노라면,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 소수자에 대한 시선
스토리와는 별개로 이 게임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소수자에 대한 이해’입니다. 이 게임을 주로 즐기는 사람들이 국적, 인종 등에 있어서 마이너보다는 메이저일 확률이 높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게임은 ‘우주판 이갈리아의 딸들‘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마이너와 메이저 역할 뒤집기에 대한 은유로 넘쳐납니다.

먼저 인류는 은하의 수많은 종족들 가운데 소수자입니다. 기술의 발전이 늦은 탓에, 주된 지적 생명체 종족들 가운데 가장 늦게 합류한 풋내기 종족이죠. 다른 종족들은 인류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으며, 아직 의회에 대표가 없는 것을 비롯해 인류의 정치 발언권은 굉장히 약합니다. 덕분에 인간들은 역으로 오히려 다른 종족들에 대해 아주 배타적인 면을 보이기도 하죠. 출발이 늦었던 탓인지(아니면 게임 중 대사처럼 수명이 짧아서 더 압축적으로 살기 때문인지) 대단히 권력지향적이고 종족 중심적인 사고를 보이고 있달까요.

다른 종족들의 설정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데, 굉장히 호전적이고 그래서 개체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크로건 인의 경우는 그 번성을 우려하는 투리안 인들이 유포한 생물학 무기(genophage: 출산율을 1/1000으로 낮춰버림, 단어에서 genocide 느낌이 물씬.) 때문에 스러져가는 종족의 아릿함이 느껴집니다. 에일리언을 연상케 하는 라크니의 마지막 남은 퀸을 놓고, 위험한 종족이니 죽여야 하느냐를 놓고 결정해야 하는 고민도 마찬가지의 느낌이고요. 주연급 조연인 라이라의 경우, 자신들 아사리 인은 타 종족과의 번식을 통해 자신들의 종족 다양성을 증가시킨다면서 자기처럼 아사리 인들끼리 번식해서 낳은 사람들은 “순혈”이라고 비웃음당할 때도 있다는 말을 늘어놓아 사람을 움찔하게 하기도 합니다.

이 정도의 의식을 담아놓고 있다면 인간인 등장인물들의 인종이 다양하다는 것(금발에 백인인, 전형적인 코카시안이라 할 사람은 아예 없다.) 정도는 딱히 내세우기도 애매하달까요.

* 기타 등등
전투는 부대 단위의 전략보다는 3인분대 수준의 전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직업 개념도 있고, 전투 외에 바이오틱과 엔지니어로도 갈려져 있기 때문에(비유하자면 판타지 쪽에서 마법사랄까요.) 주인공을 포함해 그 세 명의 조합을 잘 맞추고, 그때그때 최상의 전술을 찾아내는 것도 굉장히 쏠쏠한 재미일 듯한데… 전 그냥 가장 쉬운 난이도로 전투는 대충 넘겨 버렸습니다.

자신있게 90점 이상 줄 수 있겠지만, 모든 게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 잘 갈무리되어 있었지만, 전투 중 무기 교환이나 특수 기술 사용 인터페이스 같은 것이 좀 번거로운 느낌도 있었고, 전투차량인 마코를 타고 이동하거나 행성을 탐험하는 부분은 전체 완성도에 비하면 좀 떨어졌습니다. 우주 느낌의 전자 음악은 (사이키델릭하다고 하던가요…) 처음엔 괜찮았지만, 너무 오래 듣게 되어서 지루했던 느낌도 있었고요. 뭐, 소소한 문제들로 볼 수도 있겠지만요.

이제 큰 이야기는 다 알고 있지만 ‘그때 이렇게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호기심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네요. 한 번 클리어한 뒤로도 인물의 설정(성장 배경, 외모, 직업, 기술)을 바꿔가며 새롭게 즐기는 사람들도 많은 듯합니다. 제작사에서는 심지어 한 번 클리어한 캐릭터로 다시 시작할 수 있게끔 배려(?)도 하고 있는데(저랩 던전에 만랩 풀셋 캐릭터 끌고 가는 것과 동일.), 다음에 시간 날 때 설렁설렁 또 해볼는지도 모르겠네요.

ps: 2014년 현재 매스 이펙트1는 여전히 딱 한 번 플레이했었네요. 매스 이펙트 2는 정말 열광하면서도 딱 한 번 플레이. 트릴로지의 마지막인 3는 어쩌다 보니 발매시기 때 하지 못했는데, 워낙 악평이 많아서 아직껏 못해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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