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명함에 대한 고민

요새 이런 저런 모임에서 새로운 분들을 만날 때가 많은데, 회사를 안 다니고 있으니 명함이 없어서 인사 드릴 때 영 어색하더라고요. 명함이 없음을 설명하고 이후 이메일로 다시 인사 드리면서 연락처를 드리기는 하는데, 역시 번거롭죠. 명함 주고 받는 자리에서 얘기할 거리도 적어지고요.

그래서 이 참에 개인 명함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회사 명함도 소속 외에는 별로 자신에 대해 말해주는 게 없으니까, 이번 기회에 ‘사람들과 얘기를 시작하기에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는’ 명함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예전에 네트워킹 모임의 명찰 디자인 고민이라는 글에서 고민했던 것도 있으니까, 그것도 고려해서 아래처럼 명함에 들어갈 요소들을 적어봤습니다.P1090257

명함의 최소 기본 정보인 이름, 연락처, 직업을 한 덩어리로 묶고, 여기에 지금까지 해온 일, 그리고 현재의 관심사, 그리고 취미를 넣기로 했습니다. 일 얘기를 하고 싶다면 좀 더 본격적으로 해볼 수도 있을 것 같고, 취미를 통해 그냥 잡다한 수다를 떨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텍스트의 양이 적지는 않을 것 같았고, 그러면 좀 더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게 세로 방향으로 놓으려고 했어요. 뒷면은 어떻게 할 지 잠시 고민했는데, 똑같은 텍스트를 영어로 쓸까 하다가 양면 모두 텍스트가 빽빽하면 너무 지루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명함의 절반은 제게 할애하고, 나머지 절반은 아내 그림(지금은 육아로 쉬고 있지만 동화 일러스트레이터거든요.)과 아내 텀블러 주소를 실어서 아내를 홍보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갖고 있는 명함들을 쭉 훑어보고 이런 저런 자료들도 보면서, 위에 잡은 기본 방향을 약간 두툼한 재질 위에 인쇄하면 꽤나 그럴싸해질 듯했어요.

디자인 과정

다음으로는 그래픽 프로그램을 켜서 실제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키노트로 할 수 있었다면 뭔가 좀 더 해볼 여지가 많았겠지만, 그래픽 프로그램에서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타이포그래피와 면 분할 & 색 작업 정도 밖에 없더라고요.

namecard_design

1안이 처음 해본 거에요. 저런 식으로 면분할하는 앱들이 괜찮아 보여서 해봤는데 너무 정신 없더라고요. 게다가 한 일들이 지면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으니 이건 뭐 이력서도 아니고 너무 심란해보였습니다. 그래서 2안에서는 한 일을 가장 아래로 내리고 색깔들을 빼봤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뭔가 지루하고 소제목들이 삐뚤빼뚤해보여서 정신없어 보이고 여전히 너무 이력서 같아 보인다는 소감을 내놓았고요.  그래서 3안에서는 다시 색을 쓰되 색 조합을 바꿔보고 한 일들은 글씨 크기를 줄여서 부록처럼 보이게 바꿨습니다.

여전히 맘에 들지 않아서 4안에서는 색을 뻈습니다. 포인트 색 하나와 무채색. 딱 저다운 느낌이고 나름 청량해보여서 맘에 들었습니다. 한 일들은 회색으로 좀 더 부록처럼 보이게 만들었고요. 하지만 Interest와 Like가 너무 따로 놀아서 정리할 방법이 없어 보였습니다. Interest에 별 모양 아이콘, Like에 하트 아이콘을 넣으면 소셜 미디어 느낌도 나고 좋을 듯했지만 아이콘을 넣자니 구하는 것도 레이아웃 안에 녹여내는 것도 일이 너무 커지더라고요. 고민하다가 ‘워드 클라우드를 써보면 어떨까?’하며 5안을 가봤지만… 이건 아니라는 느낌만 강해집니다.

시간도 꽤 흐르고 해서(점심 무렵부터 밤까지 했던 기억이네요.) 고민하다가 역시 색으로 면분할 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해서 6안으로 갔습니다. 가장 눈에 띄어야 하는 연락처를 붉은 색 계통으로, Interest와 Like는 푸른 색으로(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떠올랐으면 했는데 딱히 그렇지는 않네요.), 부록 같은 느낌의 한 일들은 아주 짙은 회색으로 처리해서 바닥 쪽에 힘을 주기로 했습니다.

아내에게 한 번 더 피드백을 받아서 한 일 목록들을 일부 수정한 다음에 실제 인쇄 주문에 들어갔습니다. 명함 업체가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힘들어서 주변 분들께 추천도 받았는데, 재질 별로 견본 사진을 잘 찍어놓은 아리움이 맘에 들어서 주문했습니다. 앞면에 그림도 있고 하니까 엠보싱이 들어간 것보다는 깔끔한 무광 코팅 재질에 다른 종이보다는 상대적으로 두툼해보이는 것을 골랐어요. 첫 시도니까 어떨 지 몰라서 그중에선 저렴한 것을 골라 실패 비용을 낮춰봤고요.

최종 결과물과 개선할 점

그렇게 주문한 게 좀 전에 도착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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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망했어요… 너무 싼 티가 납니다. 망한 이유들을 적어보면…

1. 재질: 완전 대실패. 전혀 두툼하지 않고 힘이 없네요. 집었을 때의 무게감이 전혀 없어서 전단지 같은 느낌입니다. 앞뒤로 뒤집어보며 보고 싶은 느낌이 전혀 안 들어요. 엠보싱이나 펄을 피하려고 고른 종이인데 이렇게 얇을 줄은 몰랐네요.

2. 색깔: 컬러 인쇄 작업은 처음이니 당연히 어느 정도 망할 거라 생각했지만, 모니터에서 본 색감과 완전히 다르네요. 진한 핑크, 남색, 옥색의 조합이 사실 그리 좋은 편은 아니고 모니터에서도 아주 맘에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무난해보였는데, 인쇄된 걸 보니 훨씬 더 감이 안 좋네요. 게다가 짙은 회색도 거의 검은색에 가까워서 이건 뭐…

3. 텍스트 레이아웃: 이건 실제 다른 분들을 만나 보면서 사용성 테스트(;;)를 해봐야겠지만 모니터에서 볼 때와 느낌이 많이 다르네요. 명함 크기의 종이에 텍스트가 빽빽하게 적혀있으니 얇디 얇은 재질과 시너지 효과가 나면서 정말 싸구려 전단지 같은 느낌이 팍팍. 그렇게 빼곡하게 적어 넣은 텍스트가 실제 대화에 의미가 있을 지도 현재로서는 잘 모르겠고요. (너무 싸보여서 그냥 버릴 거 같은데..)

자, 그럼 다음에 개선할 점…은 망한 것들을 뒤집으면 되겠죠.

재질은 특수지를 쓰더라도 해당 사이트에서 취급하는 가장 무거운 종이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250g 등으로 표기된 것을 그냥 쉽게 넘겼는데, 주변 종이들 표기를 비교하면서라도 제대로 잡아봐야 할 듯해요. 색은 모니터를 CMYK 보정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좀 더 적게 쓰도록 해야할 듯하고요. 텍스트는 다음엔 훨씬 더 줄여봐야겠어요.

아… 그나저나 최소 주문 수량이 200장이었는데, 명함을 꺼낼 때마다 실패 이유들을 곱씹게 될 텐데.. 아무래도 20장 정도만 써보고 다음 버전을 준비하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오랜만에 실패담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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