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초, 갑자기 레트로한 느낌의 2D 플랫포머가 하고 싶어져, 스팀에서 Shovel Knight(이하 ‘삽기사’)를 구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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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임인데요. 척 보기에도 레트로한 픽셀 감성에 실제 게임은 음악도 그렇고 조작도 그렇고 난이도(..)도 그렇고 정말 고전적인 느낌이라 예전 게임들의 향수가 느껴지더라고요. 한 시간 쯤 정말 몰입해서 플레이했죠.

그리고 집에 왔는데 딱 그 향수를 좀 더 느끼고 싶었어요. 하지만 굳이 또 컴퓨터를 켜자니 귀찮더라고요. ‘특정 장르의 게임이 하고 싶은데, 굳이 몸을 움직여 애써 하기는 귀찮은’ 이런 미묘한 상태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몇 달 전에 사두곤 한 번 켜보지도 않았던 Sword of Xolan(이하 ‘졸란의 검’)이라는 게임을 발견했습니다. 우연히도 겉보기엔 놀라울 정도로 삽기사와 아주 비슷한 게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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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픽셀 스타일의 그래픽에, 남자 기사 캐릭터가 이곳 저곳을 밟고 뛰어오르며 장애물을 피하고 길을 찾고 적을 물리치는… 어쩌면 요새 인디 게임 쪽에선 정말 흔하디 흔한 레트로 2D 플랫포머죠.

삽 기사는 다른 방에 가서 컴퓨터를 켜야 하는데, 졸란의 검은 제 손에 있었으니, 일단은 별 생각 없이 졸란의 검을 시작했습니다. 흔한 게임이라고 잘 만들기가 쉬운 건 아닌데, 졸란의 검은 난이도도 그럭저럭 할 만한 것 같고 매끄럽게 잘 만들었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한 졸란의 검인데… 어느 순간부턴가 제가 이 게임을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더라고요. 스테이지마다 숨겨져 있는 포로 셋을 구출하고 보물 상자를 찾아야 하지만, 스테이지를 무사 통과하면 일단은 클리어고, 스테이지 10개를 통과하면 보스랑 싸우고, 그렇게 스테이지 10개 + 보스 묶음을 세 번 하면 끝나는, 어떻게 보면 정말 미니멀한 게임인데요. 난이도가 서서히 올라가면서, 실패하는 일이 잦아지면서도 이걸 계속 하고 있더란 말이죠.

물론 게임의 난이도 곡선을 완만하게 잘 구성해놓기도 했고, 돈을 모으면 파워업 카드를 하나씩 살 수 있어서 나름 성장의 재미도 있었고, 안 그래도 요새 게임 사놓고 클리어한 게 없는데 ‘만만해 보이는’ 이거라도 깨보자는 생각도 하긴 했는데요. 그래도 자기 전에 누워서 10-20분 넘게 하고, 점심 먹고도 좀 하고, 화장실 가서도 조금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죽으면 ‘에잇, 안 해.’하면서 홈 버튼 눌러 게임에서 빠져 나온 뒤 트위터하고 페이스북 좀 보다가 ‘한 번만 다시 해볼까?’하며 다시 켜기도 했고요. 어떤 판은 잘 안 깨져서 며칠 째 계속 도전하기도 했었어요.

그러던 어제, 드디어 이 게임을 다 깨고 엔딩을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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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 빨간 불을 다 못 채운 곳이 있어서 100% 달성은 아니지만, 일단 엔딩은 봤단 말이죠.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보름 남짓 짬짬이 하루에 40분-한 시간은 한 것 같으니 최소 10시간은 한 것 같아요. 게임 시간은 보통 체감하는 것보다 많은 편이니, 그것보다 더 많이 했을 지도 모르겠어요. 앱스토어 리뷰 중엔 서너 시간이면 다 깨서 할 게 없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저는 조작을 잘 못해서 그런지 한 10시간은 들인 것 같아요.

어, 그렇다면 ‘삽 기사’는요?

구입한 첫 날, 한 시간 아주 몰입감 있게 플레이한 다음 켜보지도 않았어요. 레트로 2D 플랫포머 하고 싶은 마음은 졸란의 검으로 풀고 있으니, 컴퓨터에선 굳이 삽 기사 말고도 다른 할만한 쟁쟁한 게임들이 정말 많았거든요. 게다가 졸란의 검과는 달리, 삽 기사는 할 때는 분명 몰입감도 있고 재미있었는데, 다시 켜자니 꽤 부담스러웠고요.

그러자, 갑자기 궁금해지더라고요. ‘아니, 겉보기엔 둘이 정말 비슷해 보이는 게임인데, 하나는 PC 게임이고 다른 하나는 모바일 게임이라는 이유 만으로 이렇게 플레이 패턴이 달라졌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바일 게임이 훨씬 접근성이 좋다라고만 얘기하기엔 부족했어요. 한두 번 실행해보고 다시는 켜보지 않는 모바일 게임도 많거든요. ‘삽 기사를 그대로 모바일 버전으로 내고, 졸란의 검을 PC 버전으로 내면, 삽 기사를 훨씬 더 많이 플레이했을까?’하는 질문을 던져봐도 그렇지 않을 것 같았고요.

그래서, 생각해봤죠. 두 게임이 어떻게 다른지. 게임 디자인 측면에서 크게 두 가지가 다른데, 각각 적어보면 아래와 같아요.

1. 세션 길이

‘삽 기사’는 일단 한 스테이지의 코스 자체가 길어요. 정확한 건 유튜브 클리어 영상이라도 찾아 봐야 비교할 수 있을 텐데,  실패를 하지 않고 한 번에 클리어한다고 해도 ‘졸란의 검’에 비해서는 두세 배 길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바로 아래에 설명할 ‘죽음에 대한 페널티’ 때문에, 실제 세션은 훨씬 더 길어지게 돼요.

2. 죽음에 대한 페널티

‘삽 기사’는 죽음에 대한 페널티가 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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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미지가 죽었을 때의 장면인데요. 플레이어 캐릭터가 죽은 자리에 세 개의 돈 주머니가 생겨요.  위 화면에서 죽기 전에 플레이어의 소지 골드는 2258 골드였는데, 플레이어가 죽으면 소지 골드의 1/4인 564 골드(화면의 -564)를 떼서 돈 주머니 세 개로 만들고, 플레이어의 소지 골드는 그 잔액인 1694 골드(화면의 왼쪽 위)가 돼요. 플레이어가 재시도해서 이 자리까지 와서 저 돈주머니를 먹으면 그 골드만큼 회복할 수 있어요. 이 다음 이미지가 좀 더 정확히 보여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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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체 코스에서 플레이어의 진도를 수평선 그래프 형태로 보여주고, 돈 주머니 하나당 188 골드씩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하죠.

즉, 한 번 죽으면 죽음에 대한 일종의 보증금을 내는 거죠. 플레이어가 이전 판보다 잘해서 그 돈 주머니를 되찾으면 페널티가 없지만, 어려운 구간이라 이전 판보다 못하게 되면 계속해서 벌금을 내게 되는 구조죠.

(1) 플레이어가 실패하면 잃을 것이 많다. (2) 플레이어가 잃지 않으려면 직전보다 더 잘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플레이어에게 실패에 대한 압박감을 강하게 주고, ‘꼭 실수하지 말아야지.’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해요. (물론, 게다가 이 게임의 레벨 디자인은 ‘어떻게 하면 플레이어가 좀 더 실수하게 만들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다소 부정적인 방향이긴 하지만, 이런 강한 스트레스는 그만큼 게임에 대한 집중도, 즉 몰입도를 올리게 되고, 성공했을 때의 쾌감도 같이 올리게 됩니다. 즉, 어떻게 보면 게임을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죠.

하지만 앞의 세션 길이와 합쳐지면, 이건 정말 큰 부담감으로 다가옵니다. ‘한 번 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는데, 중간에 실수라도 조금 하면 잃을 게 너무 많다. 그러니 실수하지 않게 집중해야 돼.’라고 마음을 먹고 게임을 켜야 합니다. 물론 이런 게 꼭 나쁜 디자인은 아녜요.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런 게 바로 몰입도를 올리는 요소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이제 이런 게임을 하기에 최소한 저는 너무 나이가 들었나 봐요. (또는 쉬운 게임에 익숙해졌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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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졸란의 검은 페널티는 최소화하는 대신 보너스를 강화하는 방향을 택했어요. 한 스테이지를 통과하기 전에 죽거나 그만두면 그 스테이지에서 벌었던 골드는 잃게 되지만, 페널티는 그게 전부에요.

그렇다면 공들여 만든 스테이지니까, 플레이어들이 여러 번 플레이하게 만들어야 할 텐데, 그건 어떻게 했을까요? 삽 기사처럼 ‘실패-만회를 위한 재도전’으로 강제하지 않고, 앵그리 버드 등에서 이미 많이 쓴 ‘별 셋으로 클리어하기’를 차용했어요. 즉, 발견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맵 곳곳에 포로 셋과 보물 상자를 숨겨 놓아, 플레이어가 ‘무난한 성공-더 완벽한 성공을 위한 재도전’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거죠. 덕분에 저는 한두 번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확 그만뒀다가 트위터나 페이스북 잠시 봤다가 다시 시도해보기도 하면서 게임을 여러 번, 자주, 결과적으로 훨씬 더 오래 할 수 있었던 거고요.

자잘하게 다른 부분도 많고, 게임의 깊이로 따지면 삽 기사 쪽이 훨씬 더 깊겠지만, 전 모바일 시대에서는 졸란의 검 쪽이 더 적합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삽 기사는 재미있어도 부담스러워 거의 즐기지 못했지만, 졸란의 검은 클리어했고, 어쨌거나 레트로 2D 플랫포머에 대한 갈증도 거의 완벽하게 채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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