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게임, 만화, 소설, 기타 등등. 한 달 동안 있었던 ‘인풋’이 될만한 경험들을 적어 봅니다. 트위터에 그때마다 간단히 남겼던 일이지만, 이렇게 따로 적어두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해서요. (다음 달에도 할 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순서는 임팩트가 약한 것부터 강한 것 순으로 적습니다.

제 감상을 적은 것이라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아래 목록을 참고한 뒤 아래 글을 마저 읽어주세요.

  • 게임: Prune, Sword of Xolan, 디아블로3,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2
  • 만화: 아스테리오스 폴립, 플루토, 덴마
  • 영화: 앤트맨
  • 책: 모닝페이지로 자서전 쓰기, 불량직업 잔혹사, 다이디타운, 은닉

# 13 Prune – 아이폰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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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une (가지 치기)라는 게임 이름 그대로 마치 가지를 쳐내며 분재를 기르는, 일종의 명상 게임이에요. 프루트 닌자+모튜먼트 밸리라는 평도 있던데, 훨씬 더 차분해요. 프랙탈 형태로 자라나는 가지를 손가락으로 그어 쳐내는 맛이 있는데, 조작 정밀도가 중요해서 화면 크기에 따라 체감 난이도가 갈릴 듯했어요. 조작 자체는 ‘손가락으로 그어서 잘라낸다’라는 익숙한 방식이었지만, 흰 꽃과 검은 가지의 식물과 붉은 독성 물질이나 날카로운 회전톱을 대비시킨 아트나 잔잔하면서도 무거운 음악 때문인지, 뭔가 반문명적인 생명의 엄숙함 같은 메시지마저 느껴지더라고요. 게임 시스템이 아주 강한 편은 아니어서, 중반까지는 인터랙티브 아트를 하는 느낌도 들었어요.

# 12 모닝 페이지로 자서전 쓰기 – 책

세스 고딘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던데, 그래서인지 메시지는 비교적 간결하고 명확합니다. 즉, ‘(1)남 얘기 아닌 자기 얘기를 쓰라. (2) 아침마다 무조건 쓰는 습관 들여라. (3) 뭘 쓸 지 모르겠으면 이 책 질문 목록에 답하는 걸로 시작하라.’로 정리할 수 있는데요. 저자가 글쓰기 워크샵을 자주 하면서 많이 다듬은 덕분에 질문 목록이 꽤 괜찮아요. ‘뭔가 쓰고 싶은데, 딱히 쓸 게 없네.’라는 생각이 들 때, 자신의 얘기를 하나씩 꺼내기에 좋아 보이더라고요.

모닝 페이지는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에서 처음 나왔다고 하던데, 매일 아침 무조건 세 페이지씩 쓰라는 거에요. 꽤 그럴싸해 보여서 좀 더 습관으로 만들고 싶더라고요.

# 11 불량직업잔혹사 –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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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영국에서 방영한 ‘The Worst Jobs in History‘라는 TV 프로그램을 책으로 펴낸 것이에요. 로만 브리튼 시대부터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는, 온갖 고되고 벌이가 시원찮고 더럽고 위험한 직업들을 다루는데요. 사회 하층민의 역사라고 불러도 될 듯해요. 문명이 지금보다 덜 발달했을 때, 사람의 손으로 어떤 일들을 해서 사회를 지탱했는지 살펴 보기에 꽤 좋았어요.

# 10 디아블로 3 – PC 온라인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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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8월에 열심히 한 게임이지만, 만렙은 9월에 되었으니 9월의 무언가에 같이 넣어볼게요. 오리지널 처음 나왔을 때 해봤었는데, 오랜만에 생각나서 다시 해보니 많이 바뀌어서 재미있더라고요. ‘수많은 몬스터를 멋진 기술로 잡아서 좋은 아이템을 얻는다’라는 핵심 외에는 플레이어가 신경쓰거나 스트레스 받을 만한 것들을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아예 빼버린 게 인상적이었어요. ‘디아블로가 이렇게나 친절한 게임이었나.’ 싶더라니까요.

스토리 모드는 사실상 투토리얼에 가깝고 모험 모드(균열 등)가 오히려 메인인 것 같았어요. 플레이어에게 좋은 아이템과 업적을 주기 위해 몹들이 좀 더 노골적으로 맞아준달까요?  ‘내가 이렇게 세고 멋지니까 니들은 잘 맞으면서 아이템을 내놔라!’라는 플레이어의 욕망에 훨씬 더 충실하고, 덕분에 더 재미있었어요.

아바타 쇼케이스 화면도 그렇고, 예전에는 못 봤던 재미들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 9 앤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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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다들 재미있게 보셨던데, 전 좀 기대가 컸던 것 같아요. 돌이켜 보면 모든 히어로들의 1편은 다 조금씩 아쉬웠기도 하고요. 제작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 중간에 박사와 박사 딸의 감정선 같은 걸 너무 오래 얘기하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축소 상태에서의 액션이 신기하긴 했지만, 축소-확대-축소를 오가며 일어나는 액션 시퀀스들이 아기자기해서 더 좋더라고요.

아마도 시빌워에 나올 듯한데, 다른 히어로들과 섞일 때 어떻게 될 지 봐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어벤저스 2도 좀 애매했는데… 왠지 마블 시네마 유니버스가 윈터 솔저에서 정점을 찍고 이제 조금씩 사그라드는 건 아닐까 하는 아쉬움도 있네요.)

# 8 Sword of Xolan – 아이폰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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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난하고 흔한 도트 2D 플랫포머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 몬스터나 메커니즘을 하나씩 하나씩 소개하는 내공이 만만찮았습니다. 사운드/음악 빼면 게임 디자인, 아트, 프로그래밍을 한 명이 만든, 사실상 1인 개발 게임인데요. 혼자서 이런 결과물을 갈고 닦아 만들어 내어놓은 걸 보면 여러모로 경외감이 들더라고요.

한 스테이지의 길이를 줄이고, 실패에 대한 페널티를 강하게 만들기보다는 ‘별 셋 받기’ 형태로 스테이지를 만들어 반복 플레이를 유도하는 등, 2D 플랫포머를 모바일에 맞춰 해석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게임 자체로도 즐거워서, 덕분에 게임을 오랜만에 ‘클리어’해봤네요.

# 7 그리버스 장군 피겨 – 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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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에피소드 7 관련 레고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요. http://www.brickinside.com/NeoView.php?Db=News&Number=242&BackDepth=1 … 새 기체들 외에 바이오니클 라인으로 인물 피겨를 만든 게 눈에 띄었습니다. 그중에 그리버스가 정말 잘 나와서 하나 샀습니다. 만들어 놓고 보니 포스가 정말 엄청난데, 조립하는 과정도 재미있었고, 손으로 들고 놀기에도 꽤 좋아보였어요.

저는 카툰네트워크에서 만든 스타워즈 2.5로 그리버스를 처음 접해서, 그리버스에 대한 기억이 굉장히 좋은데, 그걸 안 본 분들은 에피소드 3의 약한 모습으로만 기억하시더라고요. 그나저나 저는 스타워즈 적당히 좋아할 뿐 팬이라 부르기엔 민망한 수준이었는데, 왜 관련 장난감들은 늘어나고 있을까요?

# 6 아스테리오스 폴립 – 그래픽 노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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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데 뭐라 말하기 참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성격이 극과 극인 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고 부르자니, 세상에 안 그런 사랑 이야기가 어디있나 싶고. 건축하는 남자와 미술하는 여자의 사랑이라고 해도 이야기의 매력을 제대로 드러내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참 좋았는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요.

이야기도 좋지만 만화라는 매체만 가질 수 있는 컷과 컷의 긴장이나 연속성, 다른 묘사없이 그림 스타일로만 얘기하는 것도 정말 좋았어요. 예를 들자면 위에 찾아 놓은 이미지인데, 서로 스타일이 달랐던 주인공들이 조금씩 하지만 완벽하게 겹쳐지는 장면 같은 것 말예요.

# 5 다이디 타운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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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판 표지(오른쪽)도 좋아하는데, 찾아보니 영어판 표지의 쌈마이 같은 느낌이 정말 매력적이네요. 2011년 4월엔가 판타스틱에 번역 연재할 때 처음 봤었는데, 1부는 그럭저럭 재미있는 B급 하드 보일드 SF, 2부는 좀 더 친근하면서도 여전히 재미있었고, 3부는 눈가가 촉촉해지는 얘기였는데요. 4년 만에 다시 읽은 다이디 타운은, 처음 읽을 때보다 구멍이 많고 순진하고 스케일도 작은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아닌 척하며 독자의 기대대로 정의롭게 움직여주는 주인공을 보며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그대로더라요. 앞으로도 가끔 생각나서 다시 읽어볼 것 같아요.

# 4 플루토 –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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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카 오사무의 아톰을 우라사와 나오키가 새롭게 풀어낸 작품이었죠. 출간 당시에 보긴 했는데, 그땐 한 권 한 권 나올 때마다 끊어 봤더니 감흥이 그렇게 크지 않았었거든요. 오랜만에 잡았더니 한 번에 쭉 읽히는데 ‘으아, 이 작품이 이런 거였구나.’ 싶더라고요. 데스카 오사무가 만든 아톰의 설정과 플롯 안에서 아마도 아톰이 가장 하고 싶었을 얘기를 전혀 다른 장르와 캐릭터로 풀어냅니다. 우라사와 나오키 특유의 하드 보일드 스릴러로 봐도 재미있고, ‘인간다움, 인간다운 로봇’에 대한 화두도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 3 은닉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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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여행으로 다녀온, 그래서 작품의 영감이 되었고 무대가 된 체코의 올로모우츠라는 도시의 풍경. 사진은 http://www.panoramio.com/photo/84469829 의 것을 조금 리터칭했어요.)

타워, 신의 궤도에 이어 세 번째로 읽은 배명훈 작가의 장편소설입니다. 겨울의 체코를 배경으로 한 무채색, 아니 흑백 대비가 강한 이야기에요. 이야기가 기울어진다 싶을 때 쫙하고 내려가는 속도감이 짜릿했고, 위성 감시, 취향 분석, 드론, 뇌 자극 등등 지금 기술이 한두 발만 더 나아가면 될 듯한 것들이 꽤 그럴싸하게 펼쳐지는 현실감은 여전합니다. 게다가 생각도 안 했는데, 의외로 액션 장면이 눈에 잡힐 듯 선명해서 꽤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인물들은… 은경이는 이번에도 고생하고. 아이고, 은수야… 은수의 성별이 애매한 것도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같은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게 읽히더라고요. 예전에 게임 Life Line 관련 게시글들 찾아 읽다가 사람들마다 주인공의 인종/성별을 다르게 상상했다는 게 재미있었는데, 인물의 몇몇 핵심 특성을 독자의 상상에 맡길 수 있다는 건 확실히 텍스트의 큰 힘일 듯해요.

# 2 덴마 –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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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챙겨 보는 웹툰은 ‘덴마’와 ‘클로저 이상용’, 이렇게 딱 두 개인데요. 9월은 덴마 팬에겐 참 잊지 못할 한 달이었을 듯합니다. 작가는 이 장면을 그리고 싶어서 그동안 얼마나 참았을까요? 그러고 보면, 다이크 때도 그렇고(좀 더 작게는 고라 때도 포함) 덴마는 ‘복면’이라는 장치를 정말 잘 활용하네요.

# 1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 – PC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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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 게임을 이제야 해봤습니다. 연출이 정말 인상적인 게임이었어요. 아군, 적군, 엑스트라, 환경, 카메라, 모두 혼신을 다해 주인공을 위해 연기합니다. 덕분에 플레이어는 비릿한 스토리 속에서도 영웅이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되더라고요. 다양한 탈 것을 타고 다양한 무기를 써보는 경험도 꽤 좋았는데, 환경과 동선 배치, 중간중간 영화적 연출을 곁들이면서 인게임 시퀀스로 풀어낸 게 정말 엄청났습니다. 나온 지 벌써 몇 년 된 게임이지만, 좀 더 많은 걸 알게 된 지금 해볼 수 있었다는 게 참 좋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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