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 ‘마션’이 개봉했습니다. 원작소설은 ‘화성 배경의 21세기판 로빈슨 크루소’라는 평가를 들으며 승승장구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7월 말부터 번역본이 출간되어 같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소설 원작의 영화는 필연적으로 어떤 게 더 나은지, 둘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얘기하게 되고, 대부분은 둘 중의 하나가 더 마음에 들기 마련인데요. ‘마션’의 경우는 소설과 영화, 양쪽 모두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 참에 소설과 영화, 양쪽의 매력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얘기도 하겠지만 ‘이래서 좋았다’라는 얘기를 주로 할 것 같아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해주시고요.

1인칭 시점의 생존 게임 같았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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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1인칭 생존 게임 같았어요. 이건 제 팬 아트. 덕트테이프가 최고죠!
위의 그림은 소설 읽은 다음, 나름 팬아트를 그려본 것인데요. 정말로 1인칭 시점의 생존 게임을 하는 느낌이 나요. 작가 앤디 위어는 프로그래머로서 블리자드에서 워크래프트 2 개발에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야기의 구성이 상당히 게임 같아요.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 1인칭: 소설에서 이야기는 대부분 와트니의 비디오/오디오 기록으로 이뤄집니다. 자연스럽게 화자는 1인칭이죠.

* 생존 요소 관리: 기압, 산소 농도, 식량. 이 셋 중 하나라도 하한선 아래로 내려가면 게임 오버입니다.

* 메인 스토리: 홀로 남겨졌으나 살아남아 생환한다라는 큰 목표가 있습니다. 게임으로 따지면 ‘엔딩 조건’쯤 되려나요.

* 연속 퀘스트:  메인 스토리를 향해 가는 길은 험난하고 고됩니다. 큰 도전거리 안에는 작은 도전거리가 있고, 그런 작은 도전거리들을 해결해 큰 도전거리를 해결하고 나면 다음 도전거리가 생겨나죠. 퀘스트, 서브퀘스트, 연속 퀘스트 같은 구조가 떠올랐는데요. 이를 테면 ‘로버를 장기간 이동할 수 있게 만든다’라는 큰 퀘스트 안에 ‘난방 해결할 방법을 찾는다’라는 서브 퀘스트가 있고, 그 뒤로 ‘방사성 반응기를 가져온다’ 같은 게 연속 퀘스트로 뜨는 거죠.

* 아이템 분해/조립/제작: 한정된 물자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와트니는 온갖 물건들을 원래의 용도가 아닌 곳에 쓰게 됩니다. 이 과정이 게임에서 아이템 분해, 조립, 제작하는 것과 굉장히 비슷했죠.

소설의 재미는, 아주 낙천적이고 명랑한 와트니라는 캐릭터를 강조하고, 이런저런 상황과 문제 해결 과정에 대해 아주 개연성 높게 자세히 설명하면서, 독자가 마치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한 듯한 몰입감을 주는 데에 있었어요. 위의 게임 요소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경험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죠.

페이스북/트위터처럼 하나의 타임라인에서 모두의 얘기를 끌어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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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나사의 국제 우주 정거장 제어실을 방문한 배우들.
반면 영화는 상영 시간의 한계도 있다 보니, 이런 부분의 재미는 많이 덜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 와트니의 이런저런 설명들을 충실히 영상으로 옮긴다면 몇 시간짜리 우주판 캐스트어웨이+과학 다큐멘터리일 텐데, 그런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영화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에 주목합니다. 소설에서도 비중이 높았던 동료 비행사들과 나사의 책임자들은 물론이고, 패스파인더로 소통하는 엔지니어들이나, 추가 식량을 로켓에 싣는 엔지니어들, 또 로버의 개조를 돕는 엔지니어들, 그야말로 와트니의 생환을 도우려는 모든 사람들을 열심히 비춰줍니다. (심지어 동료 비행사들의 가족들이나 세계 각지에 모인 군중들한테도 카메라를 비춥니다.)

그리고, 영화의 매력을 듬뿍 살려 와트니와 그를 살리려는 사람들을 하나의 타임라인에서 수시로 교차편집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후반부에 David Bowie의 Starman 음악과 함께, 제트추진연구소에서 로버의 지붕을 뚫는 엔지니어와 화성에서 같은 과정으로 지붕을 뚫는 와트니를 교차편집한 장면 같은 건 정말 가슴 뭉클했는데, 이런 부분은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인 듯해요.

게다가 소설이 상황이나 풍경 묘사에 힘을 많이 기울이긴 했지만, 영화의 시각적 힘이란 그야말로 엄청나죠. 화면 가득 펼쳐지는 화성의 풍경도 그렇고, 비디오 저널, 우주복에 붙은 카메라, 로버의 대시보드에 붙은 카메라 등 다양한 카메라를 활용해 현장감을 살려내는 것도 좋았어요. 특히 높은 고도에서 탑뷰로 내려 보는 화성의 퇴적 지형과 먼지를 흩날리며 달리는 로버의 풍경은 경외감마저 불러 일으키더라고요. 또한 소설 읽을 때부터 기대했지만, 이곳 저곳 적절하게 깔리는 80년대 디스코 노래들도 아주 만족스러웠죠.

물론 소설에 비해 생략된 부분도 많습니다. 우선 소설의 큰 장점이었던, 기지 안에서 물을 만들어내고, 농작물을 심기 위해 토양을 준비하고, 로버를 탈 수 있게 개조하는 과정의 자잘한 재미들이 많이 빠졌어요. 주인공인 와트니의 전문 지식이 식물학과 기계 공학이라는 부분도 빠졌고요. (영화만 본 분들은 ‘무슨 식물학자가 이렇게 일을 잘 해?’라고 생각하실 지도..) 그리고, 짧은 시간에 관객이 납득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다듬다 보니 중국과 협력하는 과정이나 책임자들간의 책임 소재 부분(숀 빈의 사임)도 조금 단순해지거나 변했죠. 와트니도 훨씬 덜 고생하게 되어서, 패스파인더가 고장나 통신이 끊기는 일도, 그래서 모래 폭풍 속에서 위기를 겪을 일도, 화성상승선을 코앞에 두고 로버가 전복되는 사고도 겪지 않습니다.

이렇게 덜어낸 곳을, 영화는 관객이 바라는 장면들로 조금씩 바꾸거나 채웁니다. 소설에서도 갖은 고생을 하긴 했지만, 영화의 마지막 랑데뷰 장면은 정말 압도적이었는데요. 소설에선 미처 다루지 못했던 앙상해진 와트니가 모두와 함께 발사 준비를 하고, 소설과 달리 루이스 대장이 직접 와트니를 구하러 나서고, 와트니도 우주복에 구멍을 뚫어 루이스에게 향하고, 그러다 간신히 둘이 부둥켜 안는 그 시퀀스는… 글쎄요. 적어도 제겐 영화에서 본 최고의 포옹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소설에는 없었지만, 와트니의 강연 장면이나 탐사대원들과 나사 직원들의 후일담을 소개하는 장면은 관객들을 흐뭇하게 해줄 장면이었을 테고요.

후반까지는 ‘엇, 뭐야. 소설보다 조금 빠진 게 좀 많은데?’라는 생각을 하다가, 마지막 10분을 보고 나선 ‘아, 이걸 위해 다른 것들을 뺀 거라면 납득할 수 있다. 정말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래서, 결론은… 둘 다 보세요. 둘 다.  어느 쪽을 먼저 보셔도 둘 다 나름의 재미가 있을 거에요!

ps1: 아, 그나저나 그래비티-인터스텔라에 이어 세 번째 우주 뽕(!)이로군요. 이 들뜬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할까요.

ps2: 마션 영화 홍보를 20세기 폭스사보다 나사가 더 열심히 하는 것 같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었는데요. 책에 비해 영화는 ‘사람들’을 강조하다 보니 나사가 엄청나게 강조됐죠. 공기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모든 정보는 24시간 내에 공개되는 투명성도 부러웠지만 영화에서 보여준 조직 문화도 놀라운 수준이었죠. 책임자들은 아래 사람들이 일 하는데 필요한 것을 위임해주면서도 책임은 철저하게 자신이 지고, 아래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만 미친 듯이 몰두하면 되는 그런 곳이었는데요. 너드들에게 나사는 세계 최고의 직장처럼 보이겠더라고요.

ps3: 영화를 보면서는 ‘와, 최근 본 영화 중 이 정도로 인종 다양성과 성 다양성을 잘 지킨 게 있었나?’ 싶을 정도였는데, 실제로는 원작에 비해 약간 퇴보(?)했다죠? 인도인인 벤캣 카푸어는 빈센트 카푸어가 되어 흑인이 연기했고, 한국인인 민디 박은 백인인 민디 파크가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원작이 그만큼 대단했다고 볼 수도 있겠고 아쉽기도 하지만, 뭐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역사는 나아가겠죠.

ps4: 오랜만에 숀빈이 죽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목이) 잘리긴 했군요. :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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