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개월 유용하게 쓴 리디북스 페이퍼 프로에 관해 몇 가지 기록을 남겨봅니다.

2018년 여름에 전자책 리더 구입하기

e-ink로 만든 전자책 리더는 킨들을 비롯해 크게 성공했던 기기지만, 2018년에 전자책 리더를 사는 사람은 아마 그리 많지는 않았을 거예요. 킨들이 처음 히트할 때는 스마트폰이 화면도 작고 해상도가 낮았으며 배터리나 인터넷 환경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별도의 전자책 리더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으니까요.

뒤늦게 전자책 리더를 산 건 ‘전자책을 읽는 건 어떤 경험일까?‘라는 아주 뒤늦은 호기심 때문이었어요. 저는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책을 갖는’ 행위도 참 좋아했고, 그래서 물리적 매체가 없는 전자책에는 영 정을 붙이지 못했거든요. 몇 년 전만 해도 아마존/킨들과는 달리 국내에서 전자책을 사고 읽는 과정이 그리 쾌적하지도 않았었고요.

하지만 주변에서 전자책 읽는 사람들이 정말 흔해지고, 읽지도 않으면서 사들인 책으로 책장이 넘치기 시작하자 ‘다시 전자책을 시도해볼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단 시험 삼아 휴대폰에 리디북스를 설치하고 이용해봤는데, 구매 과정이나 책 읽는 경험이 상당히 매끄러웠고 더 읽고 싶어졌습니다. 당시 휴대폰보다 더 큰 휴대용 기기가 없던 저로서는 ‘더 큰 화면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에 리디북스 페이퍼 프로를 샀습니다.

폼팩터가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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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 두 번째가 리디북스 페이퍼 프로입니다. 제일 아래에 깔린 A5 노트보다 살짝 작고 보통의 단행본보다는 살짝 크고, 만화책보다는 좀 더 크죠. 무게는 250g, 노트 한 권과 함께 휴대하기에 전혀 부담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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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인치의 화면은 기존 전자책 리더들에 비하면 살짝 큰 편인데, 그래서 글을 읽을 때도 만화책을 읽을 때도 좋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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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하다면 가로 화면으로 놨을 때 (종이책보다 약간 작긴 해도) 만화책 두 쪽을 펼쳐서 볼 수도 있었고요.

P1150151화면도 미려해서 글씨는 물론 만화책의 세밀한 표현이나 글씨를 보기에도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냥 잘 만든 e-ink 기기의 장점이지 리디북스 페이퍼 프로의 장점이라고 보기 어려울 텐데요. 하지만 리디북스에는 리디 셀렉트 서비스가 있죠.

리디 셀렉트와 만나면 위력이 엄청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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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 페이퍼 프로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것, 리디 셀렉트입니다. 2018년 7월 3일 리디 셀렉트라는 월간 구독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 11월 9일 10권 제한을 없애면서) 페이퍼 프로는 사실상 손 안의 도서관이 되어버렸죠. 경쟁 서비스인 밀리의 서재보다 아직 서비스 도서가 적다고는 하지만, 수백 수천 권을 전자책 리더에 담아다닐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매력이죠.

여기에 휴대폰-PC 뷰어-전자책 리더를 넘어다니며 읽다 보면 그 이음새 없이 매끄러운(seamless) 경험이 참 매력 있었고요.

물론 한계도 분명합니다

물론 한계도 있습니다. 오직 전자책을 읽기 위한 전용 기기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지만, 동시에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죠.

최적화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기기 성능이 강력하지는 않다 보니, 책 하나 하나를 새로 읽어 들일 때나 수십 권의 목록을 가져올 때는 좀 느렸고요. epub 형식의 책을 읽을 때는 참 좋았지만 PDF 형식의 책이나 기타 문서를 읽을 때는 화면 크기가 약간 애매하기도 했습니다. 잡지나 동화책 등 큰 판형의 컬러 인쇄물은 페이퍼 프로로 보기는 아무래도 어려웠고요. 흑백 e-ink를 사용하는 전자책 리더가 지닐 수 밖에 없는 한계겠죠.

또한 리디북스의 의도는 아무래도 자사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기기로 한정하는 것이었겠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마음 먹고 긴 글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기기’로 여기는 만큼 Pocket 등에 저장해놓은 긴 글도 읽을 수 있게 외부 서비스도 접근할 수 있게 확장한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덕분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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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덕분에 여러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리디 셀렉트에서 권해준 책을 보다 보니 평소에 잘 안 읽던 분야도 읽었고, 읽으려고 벼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종이책이 손에 안 잡혀 못 읽었던 책도 읽었습니다.

자려고 침대에 누워도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찾다 보면 잠을 설치기 일쑤였는데, 페이퍼 프로를 들인 뒤로는 휴대폰은 침실 밖에 두고 페이퍼 프로만 침대로 갖고 오는 식으로 생활 방식을 바꿀 수 있었어요. 덕분에 수면 패턴도 좋아졌고 독서량도 꽤 늘었으며 덩달아 종이책 읽는 습관도 다시 붙였죠. 전자책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만큼 종이책을 집에서 꽤 줄인 것도 제 개인적으로는 의미 있다고 볼 수 있겠고요.

저는 자주 쓰며 사람들에게 추천하기도 했지만, ‘전자책 리더’라는 제품이 언제까지 경쟁력을 가질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스마트폰이 없는 상황에서 ‘글을 읽는 경험‘에 한정해서 놓고 보면 여전히 매력 있고 재미있지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과 같이 경쟁시켜버리면 아무래도 이것저것 아쉬운 부분들이 생겨버리거든요. 저만 해도 다른 태블릿을 구하게 되니 이 기기가 바로 좀 애매해져 버렸고요.

물론 전자책 리더 시장의 최강자라 할 아마존은 2018년 11월에도 새로운 킨들 모델을 내놓았지만, 파장은 예전만 하지 않죠. 모두에게 스마트폰이 있는 세상에서, 스마트폰으로 게임과 영상은 물론이고 연재소설과 책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세상에서, 스마트폰과 떼어내야 경쟁력이 생기는 전자책 리더라는 건 결국 일종의 틈새시장이 아닌가 싶어요. 전용기기에 구독 모델이 붙은 걸 보고 있노라면 새로운 가능성도 보이기는 하는데요.

하지만, 결국 앤드리슨 호로비츠가 2016년 3월에 얘기했듯 ‘모바일이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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