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쪽에서 일하다 보니 가마수트라에 올라온 글은 제목이라도 늘 훑어보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종종 섞여 있는 채용 공고도 함께 읽는데요. 어느 날엔가 그렇게 채용 공고 읽은 다음, 잠깐 생각이 들어서 아래처럼 트위터에 가볍게 글을 남겼습니다.

큰 의미 없이 가볍게 남겼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읽어주셔서, 몇 가지 조금 더 보충해서 글을 적어봅니다.

채용 공고, 그거 구직할 때만 읽는 거 아냐?

저도 그렇게 생각하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새로 커리어를 시작하거나 구직할 때 채용 공고를 많이 읽게 되죠. 멀쩡히 회사 다니고 있고 이직 생각이 없는데, 채용 공고를 읽는 건 시간 낭비 같기도 해요. 어쩌면 사람에 따라 배덕감이 들 수도 있고요. 다른 사람이 보면 오해를 할지도 모릅니다(‘야, 누구는 지금 다른 회사 채용 공고 읽던데? 이직할 건가 봐.’ 등등). 하지만 이력서나 포트폴리오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항상 면접을 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채용 공고를 늘 읽으면 커리어 개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의 세 가지 차원에서 말이죠.

  1. 내 미래를 위해: 아, 나 나중에 저 일 하고 싶은데 → 그러려면 지금 뭘 해야 하지?
  2. 내 현재를 위해: 나 지금 잘하고 있나? → 지금 내게 사람들은 어떤 기대를 하고 있을까?
  3. 팀/프로젝트를 위해: 우리 더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 어떤 사람이 더 필요한가? 누가 어떤 일을 더/덜 해야 하나?

이 글에서는 위 세 가지를 좀 더 자세히 적어보려고 해요(급하시면 위 세 문장만 보셔도 돼요).

그런데, 이야기를 더 하려면 살짝 둘러가야 합니다. 바로 ‘채용 공고는 어떤 글이고, 그 안의 어떤 내용에 주목해야 하는가’입니다.

채용 공고에 뭐가 적혀있는데?

직종이나 직군, 회사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채용 공고에는 대체로 다음 정보가 있습니다.

  • 회사/프로젝트 소개
  • 직책과 직무
  • 해야하는 일
  • 자격 요건
  • 필요 스킬

구직자에게는 모두 소중한 정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좋은 정보들이에요.

그럼 이 정보를 어떻게 써먹을지 하나씩 짚어볼게요.

내 미래 = 이후 커리어 개발을 위해

새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이미 회사를 다니며 커리어를 쌓고 있는 사람에게도 ‘나 앞으로 뭐하지?’는 늘 어려운 문제에요. 지금 커리어를 계속한다면 어떻게 성장할지, 또는 다른 커리어를 꿈꾼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할 때가 많아요. 주변의 누군가를 롤 모델 삼거나 동료나 상사에게 조언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여건도 있으니까요. 심지어 어떤 길이 있는지 잘 모를 때도 많죠.

이럴 때 자신의 분야, 또는 자신이 이후에 하고 싶은 분야의 세부 직책의 채용 공고를 보면 꽤 유용합니다.

직무를 통해 자신의 꿈을 구체화할 수 있고(‘난 이 경로는 별로 관심없지만 저 경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척 흥미롭군’), 그 꿈에 도달하려면 어떤 자격 요건이나 스킬이 필요한지(‘최소 몇 년 정도 이 일을 해야겠고 프로젝트의 어느 단계를 경험해야겠군. 이런 공부를 해두거나 스킬을 개발해두면 도움이 되겠네.’) 알 수 있습니다. 이왕이면 너무 먼 미래보다는 자신의 현 직책보다는 바로 한두 단계 위, 2-3년 뒤의 미래를 꿈꾸면 좋아요. 너무 먼 미래는 바로 가기에 까마득해보이지만, 바로 위의 경로는 현재 자신이 어떤 경험을 쌓으면 지원 자격이 되는지, 또 어떤 스킬을 올리면 차별화 지점이 될 지 알기 쉬우니까요.

원래 트윗에서는 여기까지만 적었는데요. 모처럼 블로그에 글을 적으니 조금 더 나아가 볼게요.

내 현재 = 현재 성과 진단을 위해

회사는 자기 평가, 다면 평가, 정기/비정기 면담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개인이 잘하고 있는지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지 알려주려고 하고, 그 결과는 연봉 협상을 통해 정량화됩니다. 하지만, 정작 개인은 아쉬울 때가 많아요. 잘한다/못한다 반응 정도는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 정도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거든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잘하고 있는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못하고/안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더 나아질 수 있을 텐데, 이런 건 주변에서 듣기 참 어려운 피드백이죠.

그럴 때는 지금 자신의 직책에 해당하는 채용 공고를 보면 도움이 됩니다. (모든 자기 진단이 그렇듯 속이 좀 쓰릴 수도 있겠지만요…)

회사마다 프로젝트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대부분 업계 공통으로 쓰는 직책은 있기 마련입니다. 해당 직책에게 기대하는 직무도 어느 정도 표준화되어 있을 테고요. 이는 나와 같은 직책인 누군가에게 세상이 기대하는 바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업계 공통의 직무를 놓고 현재 자신의 일감과 비교하면, 자신이 잘하고 있는 부분, 잘 못하거나 안 하고 있는 일들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지금 내 밥값을 하고 있는가? 다음 연봉 협상 때 나는 잘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나?’라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요. 잘하고 있다면 더 잘하면 되고,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면 고쳐나가면 되겠죠.

‘채용 공고는 좀 넓게 쓰는 편이니, 채용 공고에 있는 걸 다하면 그게 만능이지 사람인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걸 꼭 잘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나는 이런 부분에 좀 더 특화된 사람이다’, ‘나는 이 직책에 기대되는 일 중 이런 것들에는 약점이 있지만, 대신 다른 이런 것들을 좀 더 잘/많이 한다’라고 자기 객관화해볼 수도 있겠고요.

여기까지가 개인 커리어에 관한 얘기고요. 마지막으로는 조금 사족 같기도 하지만, 이왕 글을 쓰는 김에 한 발만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팀/프로젝트 개선 = 다른 사람도 더 나아지도록

사실 자기 자신만 나아져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나아지기도 바쁜데, 다른 사람, 팀, 프로젝트가 나아지게 하려고 뭔가 하는 일은 에너지 낭비나 오지랖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잘못하면 갈등이나 분쟁 요인이 될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저는 결국 자기 주변 사람도 같이 나아지게 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니, 사실 어느 직위부터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직무에 포함되기도 할 테고요. 진부한 말이지만, 결국 팀이 더 나아지고, 그 결과로 프로젝트가 잘 돼야 개인의 커리어도 더 빛이 날 테니까요.

팀이나 프로젝트 개선에 채용 공고를 활용하는 방법은 개인 커리어 개발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먼저 자신이 속한 업종, 프로젝트에 있는 여러 직책의 채용 공고를 훑어봅니다. 그럼 다양한 직책에서 수행하는 여러 직무들이 눈에 들어올 겁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팀에서 특정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 해당 직책에서 기대되는 직무를 어떻게 수행하는지도 알 수 있을 거에요.

그 사람이 그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면? 잘 됐네요. 긍정적인 피드백을 줍시다. 여러분의 동료/상사는 칭찬에 굶주려 있을 거예요.

그 사람이 그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지 않다면? 안타까운 상황이네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지는 조직/개인의 상황에 따라 크게 다르겠습니다만, 전체 프로젝트를 생각하면, 그 사람이 그 직무를 잘 수행하도록 돕거나(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면 돕는 것이 좋죠), 해당 직무를 도와줄 사람이 더 필요하다(단순히 ‘사람이 몇 명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것보다 구체적인 직무와 함께 ‘이런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면 충원 요청에 관해 설득력도 높아질 거에요)고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도 그 일을 하고 있지 않고 그 일을 할만한 사람이 없다면 새로 뽑는 게 답이겠죠. 프로젝트에 필요한 일이라서 누군가 하고 있는 일인데 그 사람의 직책에 맞지 않는다면, 직책에 맞게 직무를 조정해서 제대로 역할과 책임을 분배하는 게 효율적일 거에요.

다만, 이는 기본적으로 ‘인사’의 영역입니다. 개인/조직의 성향에 따라서 온갖 사례가 있을 테니, 정말 섬세하고 까다롭게 접근하셔야 합니다. (가장 안 좋은 사례라면 “아니, 다른 회사의 이 직책들은 이런 일도 한다는데 같은 직책의 당신은 왜 이런 일을 안/못하는 거예요?”라는 식으로 분쟁을 시작하는 불씨로 쓰는 거겠죠…) 그러니, ‘모두 반드시 큰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가 아니라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한 번 해보자!‘정도로 읽어주시면 좋겠네요.

채용 공고, 늘 읽어보세요. 구직 중이 아니라도.

채용 공고에서 더 많은 것을 읽어내는 분도 많습니다. 수많은 채용 공고를 읽다 보면 업계의 경향을 파악할 수도 있고, 특정 방향으로 깊게 파고 들면 특정 회사나 프로젝트의 상황이 어떤지 간접적으로 추측해볼 수 있을 거예요. 채용 공고를 작성할 일이 있다면 다른 채용 공고를 많이 읽을 수록 더 도움이 될 테고요.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팀이나 프로젝트를 위해, 아니 내 미래 커리어를 위해 채용 공고를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아니 지금 당장 내 커리어의 현재 상태를 진단하고 자기 평가하고 연봉 협상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러니까, 채용 공고, 늘 읽어보세요. 구직 중이 아니라도 말이죠.

ps: 이번 글은 블로그에 그동안 썼던 글과 좀 많이 다르죠? 좀 자기계발서 같기도 하고 말이죠. 저도 많이 낯설고 ‘내가 뭘 안다고 이런 글을 적나?’라는 자격지심도 드는데요. 블로그를 그냥 방치해두느니 이런 글도 적어보면 어떨까, 어차피 연말이니 핑계 삼아 이것저것 적어볼까 하며 그냥 질러봤어요. 이 참에 ‘당신이 채용 공고를 읽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같은 식으로 제목을 뽑아볼까 했지만, 그쯤되면 스팸 글로 오해하실까 싶어 살짝 톤을 낮췄고요. 편하게 읽어주세요-

ps2: 저와 마찬가지로 게임 디자인 일을 하시는 분이라면 몇 년 전에 번역했던 ‘게임 디자이너의 종류‘라는 글을 추천해봅니다. 원문은 2014년의 글이지만, 다양한 직책과 직무가 소개되어 있어서 언제 읽어도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요.